핸드폰을 분실하다
회사에서 교보문고와 연계해서 진행하는 경영독서 수강과 발표를 하면서
엊그제는 정호승시인과 함께하는 독서한마당 시간을 갖고 정호승시인의
강연과 명시 감상을 하는 기회가 있었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안치환이나 이동원의 노래로 잘 알려진 [이별노래].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등 음악도 감상하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었다.
그 분위기가 저녁까지 이어져서 정호승 시인의 건배도 있었고,
정호승 시인이 먼저 자리를 뜬 뒤에도 우리는 멀리서 4년 만에 만난
동료와 술잔이 계속 더 돌았고. 술자리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협력업체 간부들을 만났다.
그들도 회식을 하고 오는 길이라는데 한 잔 더 하자는 바람에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소주를 더 마셨고.
얻어먹은 호의에 내가 또 사겠다고 객기를 부려, 또 술자리를 가졌지만
그 때는 모두가 이미 술이 취해 횡설수설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간신히 서울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상봉동에 내려서 보니 주머니의
휴대폰이 없는 걸 확인했는데 이미 버스는 가버리고...
버스에 사람도 그다지 없었으니 전화해보면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전화는 받지 않았다.
핸드폰 분실해서 기분이 상하고 짜증도 나는데, 아내는 속도 모르고
술 마셨으면 거기서 얌전히 자던지 하지, 서울에 꿀단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뭣 하러 기를 쓰고 밤늦게 서울 집을 오려는지 모르겠다며 핀잔을 주는데...
앞으로 술 마시고는 절대 서울 집에 오지 말라는 이야기인지,
내 집 내가 오는데 허락받고 오라는 것인지. 내 깊은 마음도 몰라주는
그 말에 더 열 받고 기분 상했지만 뭐라고 대꾸했다가는 또 야단맞을 것
같아서 깨갱 꼬리 내리고 조용히 잘 수밖에...
그러나 기분은 정말 무척 더러웠다.
이튿날 아침부터 전화했지만 소용없었기에 위치 추적을 해보니,
버스 정거장에서 마지막으로 끊겼다는 것을 알고, 버스에서 내리다가
주머니에서 빠졌나보다.
정거장에서 핸드폰이 없어진 걸 확인했을 때, 주위를 살펴보았더라면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전에도 택시 안에서 한 번 잃어버려서 찾았던 적도 있거니와
이번에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지만, 결국 그 전화기는 해지하고
새로 구입했다.
남의 전화기 가져가봐야 소용도 없을 텐데, 주인이라도 찾아주면
고마워서 당연히 사례라도 받을 수 있으련만. 돌려주지 않는 그 심보가
고약하기만 하다.
혹시나 해서 그 버스 정류장을 달려가서 헤매었지만, 내 손때 묻은
그 핸드폰은 어디 꼭꼭 숨었는지 머리끝도 안 보인다.
핸드폰이야 새로 구입하면 그만이지만 그 속에 저장된 내 인맥들의
정보와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몽땅 날려버렸으니 그 것이 아깝고
서운하고 속상해서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운명론자답게 그 것이 다 주님의 뜻하심에 따른 운명일진데...
이제 내 인맥의 명주실 같은 끈도 다 떨어져 나가고 외톨이가 되어
잊을 건 다 잊고 거미줄 뽑듯 다시 새로 시작하는 수밖에.
내 부주의로 잃어버리고 홧김에 주머니가 잘못됐다는 핑계로 왠지
그 옷만 보면 재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애꿎게 옷만 내버리고 말았다.
새로 구입한 핸드폰은 최신이라는데 전에 사용하던 것과 기종이 달라서
문자 배열과 조합이 상이하고, 사용법이 달라서 사용법 익히기에 정신이
없다. 아마도 나이 탓이고 머리가 나빠서 기본만 익히는데도 오래 갈 것
같기만 하다.
어제는 전철을 타고 운길산역을 가는데, 앞에 앉은 노인이 핸드폰 벨이
한참을 시끄럽게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고 대화에 열중이다.
내가 답답하고 짜증스러워서 전화 온다고 알려줄까 하는데 마침 전화가
끊겼다. 그런데 잠시 후에 또 벨이 울리기 시작하여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아저씨! 전화 오네요.” 했더니, 그 노인 왈
“내 전화가 아니고 아저씨 전화구만요.”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제기랄. 전에 전화 벨소리만 기억하고 바뀐 전화 벨소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엉뚱한 실수를 하고, 친구들은 왜 전화 안받느냐고 지랄하고...
미안해서 나는 자리를 옮겨야 했다.
운길산을 갔다 오다가는 친구들과 늦도록 술 마시고 마지막 전철을 탔는데,
졸아서 4호선 종점인 당고개까지 혼자 가고 말았다.
시내버스도 끊겨서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고.
오늘은 비도 오고 축축한 기분에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집에 오는데
아직 훤한 낮인데도 깜빡 졸아서 노원역까지 가서 되돌아 왔다.
요즘 썬그라스 잃어버려, 핸드폰 잃어버려, 지하철에서 연일 졸아,
내가 내 자신을 생각해도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고,
이러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 미칠 지경이다. ㅠㅠㅠ
이제 내 자신에 화가 나서 이 기회에 확! 술을 끊고 싶지만.
그 것은 내가 생각해도 쉽지 않을 터이니 앞으로 1차도 5잔 이상은
마시지 않고, 2차는 절대 하지 않으리라 작은 결심을 해 본다.
- 운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