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에 쏘이다.
양봉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토종벌은 주인을 알아본다고 한다.
진위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주인집에 초상이 나면 벌들이 하얀
건(巾)을 쓰고 나온다던가. 아마도 꽃가루를 뒤집어쓰고 나오는 것이겠지만.
청원경찰 직원이 토종벌을 키우는 것을 보고 나도 욕심이 나서 재미삼아,
꿀벌을 억지로 분양받아 아니 사실은 뺏다시피 해서 작년부터 키우고 있다.
내가 키운다기보다는 강압적인 위탁이 맞는 말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양봉도 어려운 것이 주인과 운이 맞아 인연이 돼야 하는 것 같다.
지난해에는 응애(벌통 속에 기생하면서 벌집을 못 쓰게 만들어,
벌들이 도망가게 만드는 벌레)가 벌통에 침입하여 벌이 도망가고
지난겨울에는 한파에 동사하고 다섯 통 중에 겨우 한통만 남았다.
다른 사람들은 분봉하는 시기(4월말에서 5월초)에 빈 통을 세워놔도
벌들이 들어가서 새살림을 차려 벌 가족(벌통)이 늘어나는데,
나는 아무리 지켜봐도 분봉도 안하고 벌만 늘어나서 벌통을 높여 준 것이 고작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벌들이 분봉해서 다른 곳으로 도망갔을 지도 모르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내 벌통은 늘 한 개인데,
청원경찰 직원은 벌통이 계속 불어나서 부럽기도 하고 심통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시기심에 남의 벌통은 발로 차서 쓰러뜨리고 싶은 충동도 생겼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멀찌감치 서서 벌통을 바라보는데,
내 사심(邪心)을 눈치 챘던지 벌 한 마리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왼쪽 눈두덩에 달려들어 손으로 쳐내려는 순간, 잽싸게 쏘고 도망 가버렸다.
내 벌통은 주위에 풀을 뽑아주고, 출입구에 지저분한 꽃가루들을 닦아주고,
바람이 들지 않도록 통과 통 사이를 테이프로 붙여줘도, 주인인지 알아서 그런지
한 방도 쏘이지 않았고, 달려드는 놈들도 한 마리 없었는데...
얼굴이 뜨끔뜨끔 화끈거리고, 내일이면 얼굴이 퉁퉁 불 것을 생각하니
화딱지가 나서 작대기로 벌통을 작살내고 싶지만,
그러다가 벌에 더 쏘일 것 같아 겁나기도 하고, 내 벌통이 옆에 있기도 하고,
그나마 위탁관리를 계속 부탁하려면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잖아도 벌 독으로 얼굴에 열이 나는데, 그 놈의 벌 때문에 화가 나서
가슴 까지 터질 것 같기에 진정하겠다고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잤다.
이튿날. 일어나려고 눈을 뜨려하니 무언가 불편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
얼른 거울을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서 좌측 눈이 떠지지 않았고,
거울 속에는 방금 시합 끝낸 권투선수 같은 낯선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창피해서 그날은 출근하지도 못했다.
벌이란 놈이 희한해서 얼굴에는 꼭 눈두덩이만 쏜다고 하는데,
눈두덩에 쏘이면 붓기가 밑으로 내려와서 반드시 눈이 붓는다고 한다.
우리 어릴 적에는 벌에 쏘이면 얼른 오줌을 바르고,
집에 가면 엄마가 된장을 발라주던 기억이 난다.
요즘의 암모니아수 대용이겠지만.
지난주에 장마철 대비하여 벌통이 쓰러지지 않게,
받침대를 세워주워야 한다고 거들어 달라고 해서 거들어 주었다.
지난 번 벌에 쏘인 후로 거금을 들여 방충복을 사서 입고 거들어 주는데,
얼굴은 접근을 못해서인지 또, 벌 한 마리가 면장갑 위로 손등을 쏘고 달아난다.
놀래서 도망쳐서 장갑을 벗고 벌침을 뽑는데, 이번에는 언제 쫒아왔는지
한 놈이 운동화 속으로 들어가서 호들갑 떠는 사이에 또 쏘이고 말았다.
그럴 때는 조용히 있으면 쏘지 않는다고 하는데, 벌이 신발 속으로 들어갔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가.
예상대로 이튿날은 손이 권투 글러브를 낀 것처럼 퉁퉁 부어서
주먹을 쥐지도 못하게 되었고, 발도 퉁퉁 부어서 신발도 못 신게 되어 버렸다.
왼손이라서 다행이지만 운전하는 데도 불편하고, 가뜩이나 독수리 타법이
타자 치는데 더 늦어 채팅하는 데도 불편하기만 했다.
방충복을 피해 취약지점인 손과 발을 공격하니
다음에는 고무장갑과 장화를 신어야하겠다.
그런데 봉침도 많이 맞아보았지만,
벌에 쏘인 것은 화끈 거리고 가렵기도 하지만,
모기에 물린 것처럼 불쾌하지 않고 이상하게 기분은 좋은 것 같다.
벌독에 마약성분 비슷한 것이 조금은 함유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물리치료 대신 봉침 치료도 많이 하고,
엊그제 신문을 보니 여드름에도 봉독이 특효가 있다고 하고,
속설에 벌에 쏘이면 그 해는 감기에 절대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아마도 그 놈들이 내 건강을 위해서 살신성인 정신으로
내게 보답했는가 보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벌에 쏘여도 화내지 않고
내 운명으로 받아들여 고맙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 대신에 사서 먹는 믿을 수 없는 꿀 보다는
내가 직접 수확한 확실한 토종꿀을 지난해부터 먹고 있지 않는가.
이제 손등에 붓기도 빠지고 가려움증도 사라지는 것 같다.
2010. 07.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