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에 없는 벌레(신동욱(1977~ )
옛 애인에게서 받은 속옷을 셔츠를 입고 옛 애인에게서 받은 바지를 입고 나선다.
옛 애인에게서 받은 안개를 바람을 입고 엣 애인에게서 받은 황사를 입고 나선다.
변절기(變節期), 잿빛 웃음으로 낱장의 표정을 여미다.
살갗을 떠나는 각질에 지는 꽃잎 하나씩을 짝 짓다가
-우리 언제 다시 천둥과 우레 눈보라 속에서 다시 만날까
-이 소란이 끝나고 누울 때 누가 승자인지 드러나것지
그 많았던 오해와 모략과 끝끝내의 말들
오래 귀담아 들을수록 거짓은 내밀해서 점점 달콤해져만 가는 것인데
중독자여, 나는 1초의 삶을 위해 24시간 죽는가
깨지않아도 좋을 오랜 꿈속에 갇힌 번데기처럼
지적인 멜랑콜리로 자욱이 젖어있는 시집 '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에서 옮긴 시다.
"지적인 멜랑콜리"라 지적인 자수(刺繡)나 지적인 피부만큼이나 알쏭달쏭한 조합이다만은,
우아하면서도 드라이하면서도 격하게 감정적인 시편들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화자는 옛 애인에게서 받은 속옷과 셔츠와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서는데,
그 심정이 축축한 안개와 황사바람을 입은듯하다.
그렇게 처량하고 불편하건만 변절한 그녀를 끝내 벗지 못하다니.
나는 벌레야, 벌레! 벌레 중에서도 번데기지.
이 징글징글한 중독.
옛 사랑의 거짓 달콤함에 갇힌 벌레!
그래, 시인이여. 당신 속을 알것네...,
내 독한 '배갈'이라도 한 병, 같이 마실 시간은 없고 보내주고 싶네.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도감에 없는 벌레- 전문
아침 조간 신문을 읽다가 갑자기 가슴이 울컥 치밀어 올라서
하마트면 울뻔 했다.
젊다고 연애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신동욱 시인은 1977년 생이면 아직 젊은 나이인데 실연의 아픔이
꺼끌꺼끌한 황사처럼 괴로운가보다.
그리고 황인숙 시인도 우리 연배는 아니지만
실연의 아픔을 겪었는지
그 마음을 그 속을 알고 '배갈'이라도 보내주고 싶다고 한다.
누군가 사람은 떠나도 사랑은 남는다고 했지만
사랑이 남는 것이 아니고
속옷이나 바지같은 사랑의 흔적만 존재하는 것 아닐까.
그 흔적을 가지고 그리워하고 괴로워 하는 것이 남자들일테고....
어쩜 나도 지금은 번데기로 꼼짝 못하고 겨울잠을 자고 있지만
언젠가 화려하게 우화할 날만 꿈꾸며 슬픔을 안으로만 삼키는...
나도 도감에도 없는 벌레 번데기인가보다.
그런데 이 시가 아침에 [행복한 시 읽기]라는 것은 모순인 것 같다.
나는 종일 젖은 짚단 태우듯 우울하게 지냈다.
- 운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