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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길들이기 1

운명2 2015. 9. 13. 09:38

                          아내 길들이기 1

 신혼 초 생활이 깨가 쏟아진다고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연애 시절만 못한 것 같다.

왜 깨가 쏟아진다고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겠지만 연애시절 서로 자기의 약점은 감추고 잘 보이려고

 애쓰며 마음 조리고 늘 만나도 왜 그리 할 이야기가 많은지 웃고 노느라 정신없었다.
 낯선 지방에 놀러가서 그 즐거움.
 그러나 결혼을 하고 보니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추억일 뿐, 신혼 생활이 연애의 연장인 것은 아닌 성싶다.
 내가 결혼 할 때 같이 근무했던 선배로부터 아내는 길들이기 나름이라고 이제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기에

연애시절은 연애시절이고 처음부터 아내를 꽉 휘어잡고 기강을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아내에게

잡혀 공처가로 전락한다고 조언을 받았었다.
 길을 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친근한 것이라고 어린왕자가 말했던가. 고로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부터

밤늦도록 퍼마시고 집에는 늦게 늦게 들어갔다. 매일 일찍 들어가다가 어쩌다 늦게 들어갈라치면

아내는 신경질이 나서 바가지를 긁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같이 근무하는 동료는 퇴근 무렵 간식을 먹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특별요리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데 배가 불러 안 먹었더니 그럼 미리 전화를 하던지 성의를 무시한다고 대판 싸웠단다.

그로부터 그는 퇴근 후 저녁은 간식은 물론 술 한잔 안 먹고 집에 일찍 일찍 들어가는 쪼다가 있다.
 그러나 매일 늦게 들어가다가 어쩌다 일찍 들어가는 날에는 아내는 반갑게 반기게 될 터이니까.

그래서 아내에게 남편이 회사 일로 매일 늦게 귀가한다는 인식을 시켰다. 더구나 늦게 귀가 할 때는

술 취한 척 소리도 치며 아파트 문도 차기도 해서 이웃집에 들려 창피하다고 얼른 끌어들이도록 만들기도

했으며 다방에서 다방여자에게 집에 전화를 걸어 나를 바꾸어 달라고 시키기도 했다.
 그러면 저녁에는 어느 여자한테 전화 왔었다는 사실을 보고하는가 안 하는가 시험도 해보며

여자한테도 전화가 많이 온다는 것을 인식시켜 보지만 이러다가 혹시 아내가 신혼 초부터 싹수가 노래서

도저히 일생을 맡기기가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이혼하자고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해보았지만 미래를

창조하는 일류 기업인의 아내 수준으로서 무난히 감수하리라 자부도 했었다.
 그리고는 부부는 상대성이라서 남편이 조용하면 여자가 설치게 마련이고 남편이 말이 많으면

여자는 입이 무거워지는지라 나는 누구한테 뒤질세라 설(혀)을 풀었고 또 남자가 좁쌀영감처럼 째째하게

구두쇠 노릇을 하면 여자가 펑펑 헤프게 쓰며 돈 번다고 계주 노릇이나 하다가 깨지기나 하고

기껏 계 돈 타서 옷이나 사 입는지라 내가 먼저 한달 용돈을 펑펑 쓰며 여기저기 술 먹어치우고

그 것도 모자라 월급에서 술값으로 공제해서 갖다 주기도 했다.
 실은 나도 그 때 돈 쓰는 것이 아까워서 망설이기도 하고 몰래 꼬불쳐 숨겨 놓기도 했으나

다 아내를 길들이기 위함이라.
 그러나 아내가 보기에는 한심한 고로 그러니 남편이 돈을 물 쓰듯 하는데 안 살기로 작정을 했으면

몰라도 ○○회사인의 아내로서 그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어 자기가 돈을 아껴 쓰며 푼푼이 저축을 하고

보험도 들게 되는 고로 실제로 아내는 결혼 한지 3년이 넘도록 옷 한 벌 사 입는 것을 보지 못했다.
 부부란 원래 두 개의 자연석이 서로 만나 서로 부딪치고 갈리어 한 벌의 훌륭한 맷돌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했거늘 한 벌의 훌륭한 맷돌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와 충돌이 있어야 하겠는가!
 그러나 너무 갈리어 닳아지면 평평한 맷돌은 쓸모가 없듯이 엇물리어 서로의 개성을 살리어 아내의

부족한 점은 남편이 살려주고 남편의 부족한 점은 아내가 커버할 수 있어야 훌륭한 맷돌이 되지 않을까.
 남편은 주변머리가 없지만 그의 아내는 기막히게도 로비를 잘하여 남편을 출세시키는 부부를 실제로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보지 않던가. 그리고 다른 집들은 아침 출근 시 아내에게 키스도 해주고 사내가

남사스럽게 [사랑해!]를 연발하는 모양인데 나는 여태 그런 적이 없다. 말이 없어도 서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며 부부란 밤이면 어차피 같이 자야하는 것이

기정사실이고 운명인데 사랑한다는 말이 이제 와서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서 남편이 외박을 하더라도 서로 믿음이 있으니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외국의 어느 동물학자가 원숭이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하여 원숭이와 같이 살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관찰하던 중 방안에 원숭이를 남겨두고 나와서 혼자 있을 대 원숭이는

무얼하나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는데 깜짝 놀랐게도 원숭이는 바깥으로 학자가 무얼하나 내다보더라고

했듯이 지금에 와서 진실로 부끄럽게 고백을 하건데 내가 아내를 길들인 것이 아니라 내가 철저하게

아내에게 길들여진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지 뭔가.
 당구를 300치는 사람이 100치는 사람을 속이고 일부러 져주다가 막판에 크게 이기듯 아니면

바둑의 고수가 자기도 초보인척 초보자를 가지고 놀듯 해답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한두 개

틀려주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아내는 처음부터 내 속셈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짐짓 져주고 길들여지는 척했던 것이

분명한 것이 아이를 낳고부터는 서서히 본색을 들어 내기 시작해서 임신했을 때도 연탄 갈아달라는

소리가 없더니 애들 핑계로 요즘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시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연탄 가는 것은

물론 연탄재까지 치우는 신세가 되었으니 그렇다고 애들 앞에서 싸우기도 뭣하고 실은 애들도 전부

엄마 편이고 이웃집 때문에 큰소리치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꽉 잡혀서 이래저래 자타가 공인하는

공처가로 전락했으니 오오, 통재라!
 범털이 쥐 털로 변한 내 신세여!
 그렇다고 홧김에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면 아이들과 합세해서 잔소리고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고도

집에 가면 축 늘어진 어깨를 아내가 추켜세우기는커녕 또 바가지만 긁고 급여는 아내가 가지고 있는

통장으로 입금되어 나는 한 푼 만져보지도 못하는 한낱 돈 버는 기계에 불과한 내 신세는 누굴 믿고

살아야하나.
 나는 역시 종이 호랑이였던가 보다.


                                                                                    1988. 2.   운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