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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해서

운명2 2015. 9. 13. 09:44

                   인생에 대하여

 중국의 장예모 감독의 '인생' 이란 영화가 있었다.
 그림자 연극을 하면서 자녀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주인공이 중국내전을 겪으면서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기구한 인생을 감명 깊게 그리고 있다.

자기 밑에 있던 조수는 공산당원이 되어 막강한 지역 총책임자가 되어 있고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도 하소연도 못하고 그나마 지체장애자이지만 당원인 사위의 도움으로

극박한 위기를 모면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사람은 태어날 때 자기 의사가 추호도 개입되지 않았듯
이 살아가는 인생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출세해서 권력을 누리거나 돈을 잔뜩 벌어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밑바닥 인생을 그저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는 타고난 팔자소관일까.

 '그 것이 인생이다' 라는 T. V 프로를 가끔 보지만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엉뚱하게

인생을 걸고 사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굴곡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도 많다.
 I. M. F. 때문에 잘나가던 사업의 부도로 인해 하루 아침에 망가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잘 버티다가 요즘 부도내고 파산하는 사람도 있다. .
 대기업 회장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는 것도 이제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한 때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어느 재벌 회장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지금은 할 일도 없이

남은 인생을 뜬구름으로 고독하게 살겠다던 고별사로 외국에서 떠돌고 체포대가 조직되고

사법처리 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인생은 무상이라고 하는가.
 회사는 파산했지만 회장직을 내놓고 미모의 젊은 여자 아나운서 출신과 재혼해서 투병하고 있다는

사람은 그래도 나을성 싶다. 그는 무슨 마력이 있어 여자들을 끄는 힘이 있을까.
 [맨주먹의 신화]라는 표현대로 맨주먹으로 시작해 현대그룹을 이루고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켰던

정주영회장은 생전에 18번이 [가는 세월]이 었다던데 가는 세월은 그도 어쩌지 못하고 갈 때는

빈손으로 갔다.
 북한에서 조문단이 올 정도로 우리 경제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서울대에서는 정주영學 강좌를

개설한다는 등 남다른 굵은 인생을 살았지만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더니 그의 대통령 꿈은

실패로 끝나고 마지막 인생은 시련의 연속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기구한 인생을 산 사람은 고검장 승진으로 대낮에 폭탄주 때문에

그 것도 말 한마디 잘못해서 평지풍파를 일으켜 고검장 자리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다 잃고

졸지에 후배들에게 구속되고 청문회에 불려 나오고 재판을 받던 사람과 아내 때문에 검찰총장과

법무장관 경력이 무색하게 한낱 범법자로서 부끄럽게 구속됐던 사람은 권력의 최고 정상에서 최하의

구렁텅이로 추락한 그야말로 극에서 극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일 게다.
 우리들 인생은 어느 순간에 한꺼번에 붕괴되고 행복한 시간은 아무도 붙잡을 새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더니 그들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나 같으면 자살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풀려 나와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니 그 것도 한 순간의 악몽으로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저 굴곡 없이 평범하게 걱정 없이 사는 인생이 행복한 것 아니냐는 뜻으로 말했더니 철없는 아내는 후일에 백담사를 가서 얼어 죽거나 외국으로 쫓겨 다니고 철창에 갇히는 등

심하게 굴곡 있는 인생이라도 마님! 소리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내 염장을 질렀다.
 강태공은 70이 넘도록 무능한 삶을 살면서 위수강가에 낚시를 드리우고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때를 기다렸는데 문왕을 만나서 높은 벼슬을 얻고 제나라 제후까지 되었는데 젊을 때 도망간

아내가 찾아와 이제 잘 살게 됐으니 같이 살자고 했을 때 그릇의 물을 바닥에 쏟아 붓고 다시 담을 수

있느냐면서 한 번 쏟아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그 유명한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의 명언으로
멋지게 복수했다던데...
 나는 때를 기다리기는 커녕 공기업 구조조정으로 정들었던 회사를 떠나 새 회사로 바뀌었으니 마지막

내 인생도 불확실하기만 하니 어이할꺼나. 지금 현재 줄을 어디에 섰느냐에 따라 각자 회사가 틀리게
되어 각자 인생도 좋든 나쁘던 바뀔 것만은 확실하지 않을까.
 십 여년 전에 [신나는 직장, 살맛나는 OO]이라고 노래 부르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런가 하면 요즘 신세대 우상인 박찬호나 박세리, 김미현 같은 스포츠 스타 말고도 연봉을 몇 억씩 받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어느 여행사 가이드는 단돈 3,000원으로 외국 카지노에서 심심풀이로

한것이 우리 돈 12억을 횡재했다는데 세금 3억을 안 내려고 소송했는데 패소했다던가.

나 같으면 그냥 낼 것이지 욕심도 과하다고 생각된다.
 어느 탤런트 장모도 라스베가스에서 심심풀이로 카지노에 갔다가 백여 억을 횡재해서 유명해지듯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도 심심찮게 보도되는데 외국에서는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이

수 십 억대의 복권에 당첨되어 방송국에서 다큐 제작, 취재 촬영차 사준 복권을 긁었는데
 그 것이 또 1등에 당첨되었다니 정말 부러운 인생이다.
늘 복권을 사지만 나는 복도 없어 6등이 고작이니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내게는 그런 행운은

아마 영원히 없을 것이다.
 어쨌던 그들은 인생이 바뀌어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인생이 바뀔려면 방송을 타서 인기를 얻는 것이 제일 빠를 것같다. 무명시절을 보내다 방송을

타면서 인기를 얻어 코메디의 황제 칭호를 받고 돈을 많이 벌어 사업도 하고 국회의원도 한 사람이 있고
요즘도 카페 종업원이나 가스 배달부 노릇을 하다가 졸지에 길거리 캐스팅으로 방송을 타고 광고에 출연해 스타로 뜨고 돈도 많이 번 신세대 인기 탤런트나 가수들이 많은데 그 들도 자신의 인생이 새롭게

바뀐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수 년 전 충청도 어느 소도시에서 엿 가위 두 개를 가지고 신명나게 장단을 맞추며 노래하던 엿장사가

있었다. 그는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전국적으로 방송을 타게 되었고 그 때 인기를 얻어 서울 강남의

극장식 카바레에 픽업되어 계약금과 출연료로 수억을 벌어 자녀들 공부 다 시키고 지금은 다시 시골에

내려가 땅을 사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엿장사 인생에서 방송 때문에 인생이 바뀌어 출세 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어느 여자 고학생이 서울대에 합격하여 은행에 등록금을 내려다가 소매치기 당한 사건이

보도되었는데 전국에서 뜻 있는 독지가들의 성금이 너무 많이 답지되어 생활비로 쓰고도 남아

장학재단을 설립했다고 한다. 그도 방송 때문에 인생이 바뀌지 않았던가.
 방송이 영험한 주문을 외워주면 온갖 소원이 이루어져서 결식아동 밥값부터 수술비, 또 사업자금까지

선행의 손길을 모으는 그 주술의 힘이 정말 위대하다던데 누가 나도 알고 보면 불쌍하다고 방송이나

신문에 보도해 줄 사람 없을까. 나도 인생을 바꾸고 싶다.

 나 보다 늘 앞서 가던 입사 동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위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었다. 우린 평소 만나면 말로는 서로 지지않는 사이였지만 우린 서로 말이 없었고
나는 마땅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고 그의 야윈 손을 잡으며 힘내라고 한 것이 고작이었고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내가 언어의 구사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 순간 느끼며 돌아오는 길에

아! 우리가 인생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삶의 원칙들이 숙명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조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시 찾아가 봐야지 하다가 그의 부음을 들었다.
 그는 노력파로서 누구나 인정하듯 장래가 촉망되었고 한창 나이에 할 일이 아직 많을 텐데 남은 가족은

어떻게 하라고 그렇게 허무하게 죽음도 나보다 앞서 가는가. 같이 테니스를 치고 식사한 것이

얼마 전인데 생각하니 인생무상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문득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늘 살아있음을 신에게 감사하고 감격하는 하루가 되기를 신에게 나도 기도해야 하겠다.
 하긴 내 친구들 중에서도 병으로, 교통사고로 벌써 유명을 달리한 사람이 몇 몇 되고 학창시절 운동부로서 만년 스포츠맨이었던 친구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지금은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거동하며 사는

친구도 있다.

 또 장가를 잘 가서 처가집 덕분에 출세한 인생이 있는가 하면 아내 때문에 장관자리에서 물러나고

낙마한 인사도 많다.
 내게 한 고향에서 나고 자란 내 초등학교 동창이 있는데 내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대처로 나왔을 때

그는 공부를 포기하고 돈 벌러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었는데 고생 끝에 지금은 동대문에서 의류사업도

하고 이 것 저 것 사업을 한다는데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었는지 강남에 빌딩을 사고 옛 새마을 연수원을

인수하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내가 여름휴가를 동해안으로 갈 때 그는 알라스카로 사이판으로

또 태국에서 골프를 치고 오며 아이들도 모두 외국에 유학 보냈다.
 지금도 시간만 나면 골프를 치고 다니는데 어느 정치가와 또 누구 연예인과 골프를 쳤다고 자랑하며

가끔 새로운 친구가 생기면 나를 믿고 나한테도 자주 오곤 한다.
 얼마 전에는 남서울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했다고 시계 달린 고급 혁띠를 선물로 가져와서 자랑을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만 나오고 대학교 나온 여자와 결혼해서 아내가 이태원에서 옷장사를 하는데 당신은

영어가 짧으니 매장에는 얼씬도 하지 말란다며 출퇴근만 시켜주면서 사는 친구도 있다.
 
 일찌기 사마천이 탄식했듯이 착한 사람은 고생하며 살고 악한 사람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오래 살고

자라야 할 사람은 자라지 않고 자라야 않을 사람은 크게 만들어 놓는 것이 세상사이고 보면 인생이란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모순의 연속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가끔 나의 무능함, 무기력함에 죽고 싶을 때가 있지만 인생의 성공은 학력과는

아무 상관없이 숙명적인 그 어떤보이지 않는 각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운명은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지만 숙명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던가.
 어느 서울대교수가 정년퇴임사에서 인생은 살아 볼만한 것이고 젊은 날에는 인생에 대한 꿈이

너무 컸었지만 지금에 와보니 인생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는데 나 역시 내 인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비통한 심정으로 분명히 느끼며

인생이라는 것이 끝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라 한다면 일생토록 간직하고픈 행위의 인생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종이 위에 오자는 지울 수 있어도 한 번 정해진 행위는 지울수도 없이 내 역사 속에 실패한

인생으로 엄존할 뿐이니 괴롭기만 하다.
 인생은 미완성이고 재방송이 안 되는 생방송이라는 노래도 있고 어자피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因따라 와서 물같이 흐르다가 緣을 다하면 바람처럼 어디론가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는데 나이가 들수록 서글퍼지는 내 인생.
 아내도 전 직장은 웬지 든든하고 그 회사 가족이라고 하면 남들이 부러워하며 알아주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벤처회사처럼 이름도 생소한 무슨 지역OO회사이냐며 착잡한 심정을 푸념하고

십년만 젊었어도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버티어 보겠건만 나이 들어 어쩌지를 못하고
정든 회사를 떠나야하는 기로에서 어찌 나 혼자만 심각한 고민을 했겠냐만은 오늘 저녁은 술이나

실컷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내 18번인 [인생]이나 불러야 할까보다.

 세상에 올 때 내 맘대로 온건 아니지만은
 이 가슴에 꿈도 많았지.
 내 손에 없는 내 것을 찾아 낮이나 밤이나
 뒤 볼 새 없이 나는 뛰었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꿈만 같은데
 두 번 살 수 없는 인생, 후회도 많아
 스쳐간 세월 아쉬워한들 돌릴 수 없으니
 남은 세월이나 잘 해봐야지.
 돌아본 인생 부끄러워도 지울 수 없으니
 나머지 인생 잘 해봐야지.

                                                        2001. 봄. 공기업 분할로 정든 회사를 떠나면서.

                                                                                                - 운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