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느즈감치 늦둥이를 키우다 보니 이만 저만 귀찮은 것이 아니다.
나는 컴을 해야 하는데 녀석이 게임을 한다고 뺐지를 않나. 장기판을 꺼내놓고 장기를 두자고
하지를 않나. 오목을 두자고 조르지를 않나. 몇 번 받아 넘기지도 못해 내 인내심에 한계를 느껴 짜증이
나도록 하는 배드민턴을 치자고 하지를 않나. 그래도 그런 것은 견딜만한데 축구를 하러 가지고 할 때는
난감하다. 친구들 아빠는 축구도 하고 같이 놀아 주는데 아빠는 뭐, 그러냐고 하면서 훌쩍거리고 아빠는
채팅만 한다고 난리 부르스다.
자슥, 지 아빠 나이는 생각 않고.... 늦둥이 키우는 사람은 이 것이 애로이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어느 글에서 사랑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며 어느 바쁜 아빠가 모처럼 휴일을 맞아
식구들의 간청에 마지못해 낚시를 갔더란다. 그 날 밤 그의 일기에는 '오늘은 아이들과 노느라고 소중한
하루를 낭비하고 말았다!.'라고 썼는데 그러나 그의 아들의 일기에는 '오늘은 아빠와 함께 낚시를 했다.
내 일생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소중한 날이었다.' 라고 썼더라는 글을 보고 나도 양심에 걸려 아들하고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놀아주어야겠다고 다짐했기에 오늘 늦둥이 아들의 수영장 가자는 성화에도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선뜻 수영장을 갔다.
놈은 그 동안 수영강습을 받았기에 아빠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나 보다.
평영, 배영, 자유형, 그리고 힘이 든다는 접영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있어 내가 보기에도 대견했다.
하지만 나는 깊은 물에 빠져도 죽지 않고 헤엄쳐 나올 정도의 개헤엄과 힘이 덜 드는 배영은 할 수 있지만
코를 물에 넣어 숨을 삼키고 다시 물 속에 나와서 호흡을 하며 음파! 음파! 하는 수영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다. 호흡 곤란에 대한 공포증이랄까.
그래서 지금도 나는 물속에 들어가려면 코를 손으로 잡고 눈을 감아야만하기에 정식으로 수영을 배울
마음은 없다.
어릴 적에도 물이 맑아 바닥이 보이는 개울에서는 헤엄을 쳤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저수지에서는
자유롭게 친구들이 건너 다녀도 나는 겁이 많아 엄두도 못 냈다. 왜냐하면 시퍼런 물속에 이무기나
그 어떤 괴물이 숨어 있다가 물속에서 내 꼬추를 확! 땡길 것 같은 공포감에서 친구들이 겁쟁이라고
놀려도 나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나 혼자 개헤엄을 친다면 망신일 것 같아 눈요기만 하기로 했다.
수영장에는 여자들 천지였다.
뱃가죽이 늘어진 나이든 아줌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늘씬한 젊은 여자들도 많이 보였다.
언젠가 내가 아내에게
'밑에 집 아줌마는 매일 수영장에 가는 거 같네.' 하니까
'빈궁마마들이야 매일 수영장에 가도 되겠지.' 하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별로 사이가 안 좋은
것 같더니... 뭔 일이 있었나.
나는 빈궁마마의 뜻을 얼른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그 뜻을 알아차리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건강상 피치 못하게 수술로 자궁을 제거하여 말 그대로 자궁이 없는 여자를 빈궁마마로 부른다는
것이었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인구조사 하듯 공개적으로 발표를 안 해서 그렇지, 빈궁마마의 숫자도 상당히 될 듯싶다.
옆 라인에서는 젊은 여자가 개인 렛슨을 받고 있었다. 수영강사는 열심히 교육을 하고 손을 잡고 허리를
잡아주고 밑에서 배를 받쳐주고 가르치는데도 초보자라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재미도 있고 우습기도
해서 나도 어깨너머로 배울 겸 계속 지켜보았다.
근데 휴식시간 이었는지 강사는 보이지 않고 그 젊은 여자가 나한테로 슬슬 다가오더니 말을 거는 것이었다.
'아자씨! 저 알아요?'
나는 나한테 자겁이 들어오나 보다고 좋아서
'아뇨. 왜요? 헤헤헤!'
'근데 왜 자꾸 나를 보고 웃어요?'
'뜨악!' (옆집총각 버전)
그런데 아들놈이 마침 다가오더니
'아빠! 뭐해요?'
'아냐. 아무 것도....'
그리고는 얼른 아들을 끌고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하는 말
'저 아줌마하고 연애하려고 그러지?'
'또, 뜨악!'
이제 그 여자는 쳐다 볼 수도 없고 다른 곳으로 눈을 주는데 쭉쭉빵빵한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나서 침을
흘리며 쳐다보면서 저 여자도 겉은 멀쩡해도 빈궁마마일까? 생각해 보는데 아들 녀석이 또 오더니
'아빠! 변태 같애!'
'엑! @@@@! 이 자슥이 못하는 말이 없어.'
나는 수영장에서 돌아오면서 아들한테 오늘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면 사실대로 말하라고 시키는 것이 될 것 같아서 이 녀석 머리에서 빨리 오늘 일을 삭제시키는 일
뿐이라고 생각해 잔머리를 굴려 시간을 끌려고 할인매장에 들려 음료수도 사주고 길거리에서 붕어빵도
사주며 시간을 끌었다.
녀석은 자기가 사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자진해서 푸짐하게 사주는 것이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내 보람도 없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놈은 주방에서 저녁 준비하는 엄마한테 고자질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 눈치였다.
짜슥! 입도 싸기는.... 그렇다고 공갈 협박을 할 수도 없고.
나는 내 방에 들어가 문을 조금 열어놓고 거실의 동태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은 엄마한테 고자질을 하는 것이다.
'엄마. 엄마! 귀 좀 빌려 봐.'
'아빠가 수영장에서 여자들만 쳐다보고 어떤 아줌마하고는 연애하려고 했어.'
'안 봐도 비디오다!'
'조용히 말해요. 아빠 듣겠어.'
'근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냅 둬라. 그 것이 아빠는 젊게 사는 비결이란다.'
' ?????.'
2003. 01. 15. - 운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