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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와 [희정]이라는 여자

운명2 2015. 9. 17. 06:05

                   [샘터]와 [희정]이라는 여자

 샘터가 지령 400호를 맞이 했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초창기 샘터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작고 얇아서 읽기 쉽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잔잔한
이야기이면서도 아주 유익했던 책.
 누구나 기차나 버스를 타면서 손에 들고 타던 책.
 그 샘터가 창간한지 30년이 넘어 400호를 맞이했다는
기사를 보고 불현듯 생각나는 희정이!
 
 70년대 군 생활을 할 때 그러니까 30년 가까이 되었다.
 모두들 애인한테 편지가 수북히 오는데 나는 별로 편지가
오는데도 없어 펜팔을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잔머리를 굴려 샘터 책에 투고를 했다.
 아마 내용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짧게 샘터 책을
줄곧 유익하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 끝에
그런데 지금은 군에 입대하고 전방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이제는 안타깝게 샘터를 볼 수 없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으리라.
 
 그로부터 한 달 후쯤에 나한테 샘터 책이 우편으로
오기 시작하는데 우리 나라는 마음 착한 여자들도 많아서
자그마치 50여권이 넘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후로 나처럼 JQ(잔뇌지수)가 높은 군인들이 늘어나서
샘터 책 맨 뒤에 지면을 할애해서 샘터 책을 보내 달라는
군인들 주소와 성명을 밝히고 샘터 출판사에서도 군인들에게
샘터 보내기 운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여튼 너무 많이 와서 내무반에 나누어주고

편지 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처음에는 고맙다는 간단한 인사로

답장을 전부 보냈고, 그 후부터는 주소와 이름과 글씨체와 내용을 보아가며

선별해서 답장을 보내기 시작하여 소위 펜팔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내 편지에 답장을 안 해오는 도도한 여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펜팔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샘터 책을 읽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니까 동정심에서 책을 보내 준 것 같기도...
 
 그렇게 해서 하나 둘 차츰 떨어져 나갔지만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상대로 편지를 쓰다 보니 내용이 비슷해지고 한 이야기 또 하고
딴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를 이 쪽 사람에게 하고...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헷갈려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
또 떨어져 나가고...
 그리고도 네 댓 명과는 오래 동안 계속 펜팔을 했었는데
그 중의 한 여자가 희정이다.
 인천시 북구 작전동인가 살았는데 자취를 하면서 일한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어느 공장에 나가는 것 같았는데 글씨체가 반듯하고
시원시원하게 잘 썼으며 내용도 너무 착해서 내가 좋아했었다.
 평상시 자기의 생활과 생각을 아주 잘 표현하여 아주 살갑게
편지를 썼었고 편지에 꼭 향기 나는 껌을 하나 씩 보내 왔었다.
 
 봄부터 펜팔을 시작하여 가을에 흑백 사진을 보내 왔는데
긴 생 머리에 갸름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해 성탄절에 나는 서울 누님댁으로 외박을 나갔다가 귀대해 보니
희정이라는 여자가 어제 면회를 왔었단다.
 면회 온다는 말은 전혀 없었는데...
 아뿔싸! 괜히 나는 반대로 서울로 갔었구나! 이럴 수가....
 
 내가 군 생활을 하던 화천 사창리는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비포장도로를 누런 흙먼지를 날리며 4시간이 넘게 타고 와야 하는 곳이고
이동에서 일명 캬라멜 고개를 꼬불꼬불 멀미가 나도록 수 십 번 돌고 돌아
지루하게 광덕산을 넘어와야 되는 곳으로 저녁 늦게 그 시간에 면회를
왔다면 서울로 돌아가는 막 버스가 끊겼을 시간인데...
 너무 안타깝고 아쉬워서 급히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가 배달되기도
전에 나는 희정이 편지를 받았다.
 
 예고 없이 불쑥 면회를 해서 나에게 더 큰 기쁨을 주려고
그 먼길을 찾아갔는데 불행히도 면회를 못하고 도로 서울로 가려니
차가 끊겨 난감해서 눈물이 났었고, 어쩔 수없이 사창리 서울여관에
들어갔는데 무서워서 밤새 잠 못 자고 그렇게 슬플 수가 없더라고 했다.
 이튿날 서울로 해서 인천으로 오면서 계속 졸았는데

그렇게 멀리 있는 곳 인줄 몰랐다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죽장갑도 준비했는데 도로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는 그 편지를 보면서
 아! 얄궂은 운명이여!
 내가 서울로 나간 것이 후회 막심하고 희정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고
희정이 혼자 전방의 낯선 여관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갔다는 것이
안타깝고 안쓰럽고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는 영화가 있었고
 [몸 전체로 사랑을]이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몸 전체로 주려 했던 고마운 희정이! (ㅋㅋㅋ)
 아마 이것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겠지만...
 
 그래서 희정이와 더 정이 들었고 한 달인가 지나서
추운 겨울 어느 날 우리는 서울역 시계탑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 당시에는 왜 시계탑에서 모두들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는지...
 (얼마 전에 서울역에 갔었는데 그 시계탑은 아닌 것 같은데

시계탑이 아직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밤 진짜 외박하겠다 싶어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때 빼고 광내고 서울역 시계탑에 갔을 때 내 예상과는 달리 희정이는
혼자가 아니라 작고 동그스름한 친구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어쩌랴, 서울역 앞의 한진 고속이 있던 한진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인사를 나누고 저녁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 희정이 친구 때문에 제대로 대화도 안되고 분위기도 안 살고...(으이 쒸!)
 이제 그만 자리를 피해 주었으면 좋겠구만.
 착한 여자는 눈치가 없다더니...
 영 눈치 없이 희정이와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고 눈치를 주어도
가지도 않고 희정이도 친구를 보낼 생각도 않는 것이 애만 탔다.(제기럴!)
 
 결국 내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속으로 화도 치밀었지만
겉으로는 내색도 못하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그 먼 사창리까지 혼자 늦게 면회를 올 때는 무슨 마음이고
이 곳 서울에서는 무슨 마음으로 친구를 대동하고 나와서 끝까지
버티는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여자의 마음이란 예나 지금이나
알 길이 없다.
 어느 외국영화에서 여자들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가 여자들과 좌충우돌 벌이는 해프닝 영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여자의 깊은 속 마음과 내숭을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그 키 작은 친구가 질투가 나서 희정이를 떼 놓지 않고
일부러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너무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희정이가 못 미더워서 안쓰러운 마음에 신변보호 차원에서 끝까지
희정이를 지켰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친구를 보내지 않고 내 속만 태우던 희정이...(헐헐)
 나는 그 날 밤 기분 꿀꿀하게 응암동 누님 댁에서 신세를 졌고...
 그 후 그 좋고 착하게만 생각되던 희정이가 야속하게만 느껴지고
불타오르던 정도 식어서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희정이를 너무 가볍게 여겼던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그 당시 한창 혈기 왕성한 청년으로써

그런 착각도 가능했었지 않나 싶은 변명도 해 본다.
 지금도 희정이와 같은 세대이면서 서로 다른 인연으로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운명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희정이는 착했었고 편지도 잘 썼기에 아마도 지금 혹시

이 사이트에 들어오지는 않을까 싶은 것이 불현듯 생각이 나고

만약 극적으로 지금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갑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겠지만
이 말만은 꼭 물어 보고 싶다.
 그 때 왜 친구와 끝까지 버텨서 내 애간장을 녹였느냐고...
 그리고 그 키 작은 친구는 지금은 어디에서 눈치 없이
살고 있느냐고.....
                                  
                           2003. 05. 06.     - 운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