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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운명2 2015. 9. 18. 05:41

                      『약속』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옛 날 공자의 제자 증자는 아내가 장보러 가는데 어린 아들이 따라 가겠다고 울며 보채자

집에 있으면, 장에 갔다 와서 돼지고기를 삶아 주겠다고 약속을 해, 달래놓고

장엘 갔다 와보니 증자가 돼지를 잡고 있어 깜짝 놀라 따지니 아이와 돼지고기 먹여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아이와의 약속은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한다.
 그런데 일 전 미국 테네시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도서관에 있는 14,000권의 책을 학생들이 다 읽으면

지렁이를 먹겠다고 약속을 하고 학생들이 정말 그 책을 다 읽으니 약속대로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지렁이를 먹었다고 한다.
 교육적으로 도저히 어린 학생들과 한 약속을 어길 수가 없어 지렁이를 튀겨서 기분 나쁘지 않은 표정으로

꿀꺽 삼켰다고 하는데 지렁이를 산채로 먹겠다고 약속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지 않았을까.
 
 약속은 지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고 보면 각종 公約을 내걸었던 요즘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는 자기가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 空約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는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한 날, 한 시에 죽자고 도원에서

굳은 약속을 했지만 그들은 각자 다르게 죽었지만 신라의 화랑 사다함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친구가 죽자 사나이답게 자결하지 않았던가.
 나는 초등학교 시절 사다함의 이야기를 듣고 남자로서 지키지 못 할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일단 한 약속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지켜야 하겠다고 다짐했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왔다고 자부하고 싶다.

 로마의 레규러스장군은 카르타고제국과의 포에니전쟁 때 포로가 되었고

전세가 불리해진 카르타고에서 로마와 휴전을 하기위해 레규러스 장군을 풀어주며

강화를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고 만약 로마가 강화에 응하면 돌아오지 않아도 되지만 강화에 불응하면

다시 카르타고의 감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약속 같지 않은 약속을 했다. 

로마로 돌아가게 된 장군은 황제에게 자신이 풀려 온 이유를 설명하면서 지금 카르타고는 심한 혼란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만 버티면 그들은 스스로 멸망할 것이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적국의 실정과

군사정보를 상세히 알려준 뒤 절대 강화에 응하지 말 것을 부탁하고 자신은 그들과의 약속대로

카르타고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류했지만 그는 단호히 말했단다.
 '만일 내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모든 로마인들을 거짓말쟁이라고 비웃을 겁니다.

이   것은 나 개인이 아닌 로마제국 전체의 명예와 신의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비록 적과의 약속이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했다 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려는 남자다움에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또 옛 날 노나라의 미생이라는 사나이는 어느 날 다리 밑에서 여자와 만날 약속을 했고

미생은 일찍부터 나와서 기다렸지만 시간이 되어도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때마침 큰 비가 내려

강물이 불어났는데도 미생은 약속한 장소를 떠나지 않고 결국 다리 기둥을 안은 채 물에 빠져 죽었다.
 좋게 보면 미생은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킨 신의가 두터운 사나이고

나쁘게 보면 목숨을 잃을 만큼 우직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다.
 장자도 그를 비웃고 信이 지나치면 患이 된다고 까지 했다는데 그를 비웃기 보다

약속을 어긴 여자가 나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약속을 어길 만한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통행금지가 있던 총각 시절, 나는 고급 룸싸롱 아가씨와 애프터로 밖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추운 겨울 밤, 아무리 기다려도 아가씨는 오지 않고 나는 통행금지에 걸려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유치장에서 떨면서 미생이 얼마나 어리석었나를 깨달았다.

옛 미생도 아마 주막집 여자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 시절 나는 뚜렷한 결혼 상대자 없이 몇몇 여자를 만나고 다녔는데

80년대 혼미스럽던 서울 종로에서 한 여자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찾아가는데

서울역에서 부터 시위대에 막혀 약속시간을 넘겨 버렸다. 지금처럼 호출기나 휴대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라서 연락 할 방법도 없이 애를 태우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포기하려다가

그래도 메모는 해놓고 갔겠지 하고 찾아갔는데 세 시간이 넘도록 그녀는 미련스럽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 보다 무엇 하나 더 내세울 것도 없는 그녀였지만 나를 믿고 이렇게 기다려 준 것이 고맙고 

믿음이 가서 나는 이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을 먹었는데 그 여자가 지금의 아내다.
 그 믿음 때문일까 아내는 지금까지 내가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놀고 다녀도 별반 말이 없어

고맙고 미안 할 따름이다. 아마도 늙어서 보자는 것은 아닐런지.

 말이 나왔으니 여기서 또 이루지 못한 내 사랑의 약속 이야기도 해야 하겠다.
나에게는 열렬히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고

소원해져 서로 잊고 지냈는데 내가 군에서 제대하고 우연히 연락이 닿아 운명처럼 다시 사랑이

불붙게 됐지만 두 살이나 연상인 여자의 아버지 반대로 난관에 부딪쳤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눈물로 아버지를 설득하고 언제까지도 기다리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자고 해인사 부처님 앞에서 굳게 맹세했지만 그 약속도 시간이 흐를수록

시나브로 퇴색되어 갔고 언제까지라도 기다려 보자던 그녀도 지쳤던지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결국 그녀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 작별을 고하고자 마지막 만났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그녀는 많은 말을 했었다.
 사랑은 감성이지만 결혼은 냉철한 이성을 필요로 한다면서 부모님의 축복을 받는 결혼을 하고 싶지

부모님을 외면하고 부모님이 인정하지 않는 결혼으로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평생 불효하면서

살 자신이 자기에게는 없다고 했던가.
 난 조금은 서운했지만 나도 그녀를 평생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는 것 같아 내가 한없이 초라해져

이것도 운명이려니 하고 덤덤히 받아 들였다.
 
 그리고 더 슬펐던 것이 마지막 선물로 고급 가죽혁띠와 장지갑을 주며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벌고 이 다음 나이 들어서도 배 나오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정작 그녀는 우리는 그래도 한 때 사랑했기에 헤어지더라도 잊지 말고 서로의 행복을 빌면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 더 행복하게 살자고 경주라도 하듯 다짐하며 우리가 중년이 되어있을 2000년,

우리가 맹세했었던 3월 1일 정오, 해인사 일주문 앞에서 만나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았던 모습을 확인하고

또 자랑하자며 엉뚱한 약속을 제의했고 나는 너무 의외였지만 싫지는 않아서 반드시 꼭 지키자고

굳게 약속했었다.
 
 입으로 말 할 수 없는 작별을 눈으로 말하게 해 달라던 괴테처럼 그렇게 나는 보냈는데

벌써 20여 년이 흘러 다 큰 자식을 두고 50 고개를 바라보며 그럭저럭 살아 왔는데

이제 2000년이 내 년으로 다가 왔으니 야릇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젊었을 때는 첫사랑 여자를 만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그 후로도 두 번인가

해인사에 들른 적이 있었을 때도 그리움에 가슴이 설레였었는데 그 것도 젊음이 시드는 것처럼

열정도 희미해져 어느 소설가처럼 늙어서 연애는 그리움은 일지만 정욕이 없어 시들해진다더니

나도 늙었는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텐데 만나 본 들 무슨 소용 있을까 하는 마음과

여자는 첫 사랑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지도 의문이고

설사 기억하고 있더라도 여자가 약속을 반드시 지킬지는 더 회의적이다.

 그러나 부질없는 약속이라도 사나이 약속인데 내가 먼저 어길 수는 없기에

그 날이 오면 멀지만 내가 먼저 해인사에 가서 언제까지라도 기다리다가 폭풍우가 몰아쳐

미생처럼 일주문 기둥을 껴안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약속 시간에 나가야 하리라.

 - 그 녀의 집은 해인사에서 가까운 거창이었고 수 년 전까지도 거창에 살았었다는 얘기를

얼마 전 얼핏 들었기에 새삼스럽게 생각이 났다.-

                                                                            1999. 가을.

* 2000년 3월1일. 해인사를 갔었다.
  예상한대로 오후 2시가 되도록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각오를 했기에 그 다지 실망은 없었지만
  사나이는 아무리 시간과 환경이 바뀌었어도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데
  여자란 현실 속에 안주하는 속물로 여겨져 조금은 씁쓸한 마음으로
  사하촌에서 술 한 잔 마시고( 잔뜩 먹고 취하고 싶었지만 운전을 해야 하기에)
  밤늦게 고속도로를 달려오며 많은 상념에 눈물을 삼키며 왔다.
 
                                             -  운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