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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첩 이야기

운명2 2015. 9. 23. 20:15

                        나의 애첩 이야기

 내가 그 녀 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이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가 웬 부인을 본처처럼 데리고

자는 모습이 부럽게 보여 나도 소개를 받았다.
 친구 부인은 전라도 담양 이 고향이라던데, 나는 연변 조선족도 아닌 중국 운남성 출신

여자라서 짝달막하고 피부가 좀 거칠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인격을

무시하고 함부로 다루어도 말없이-물론 말이 통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고이 순종하는 모습이

더할 수 없이 좋게 보였다.
 굳이 흠을 잡는다면 몸매가 볼륨이 없고 가슴과 허리 사이즈가 같은,

전형적인 아줌마 스타일이라는 것이지만. 그나마 그런 여자를 만난 것이 다행이지

어디서 나 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80에 B컵인 예쁜 몸매의 젊은 여자를 만날 수 있으랴.
 그리고 나는 그 마음 착한 여자를 만나자 마자,
 아내에게 제일 먼저 이실직고를 하기에 이르렀는데...
 예상외로 아내는 빙긋이 웃으면서
“그러잖아도 내가 당신을 제대로 못 챙겨주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시앗이라도 보라고 권 할 참이었으니 잘 됐네요. 그런데 당신도 이제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봐요. 이제 소원 성취했으니, 시원하시겠네요.” 했었다.
 지금에 와서 솔직히 고백하건데, 그렇게 나도 아내의 허락을 받고 생긴 애첩을 남들

모르게 비밀(?)로 하여 4년 동안 더불어 생활했으며, 지금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잘 지켜주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그 여자의 중국 이름은 [竹姬]였는데, 나에게 그 [竹姬]를 소개해준 체구가 작은 친구는

자신의 부인은 키가 커서 품에 안기에 벅차다면서 아담한 내 애첩과 바꾸자고 성화 였지만

천민출신(?)인 친구는 그런 기발한 발상을 하는지 몰라도 양반의 후예로서

내가 남의 부인을 물려받고 내 애첩을 내주는 현대식 스와핑 을 어이 한단 말인가.
 아무리 인물이 쳐져서 값싼 몸값에 중국 서민 출신이라서 누가 봐도 천박해 보이지마는

그렇다고 미끈한 남의 부인을 넘볼 수야 없지 않은가

 중국 출신이라서 미모는 좀 떨어지지만 하는 짓이 너무 예쁘고

나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주어 서방님 모시기를 사근사근 싹싹하게 휘감기며 받들기에

중국에서는 [竹姬]라 한다지만 남들은 내 애첩을 높이 불러 [竹婦人]이라고도 했다.

 조선조 이유원의 글 ‘임하필기’에 보면
“무더운 여름 평상에서 죽부인을 두고 수족을 쉰다.

그 가볍고 시원함을 취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竹姬]는 잘 마른 황죽을 참숯에 지지면서

엮어 만든 것으로 길이는 대략 넉자 반, 지름은 한 아름 정도이다. 구멍이 나도록 성글게 짜서

원통형이 되게 한다. 살결에 닿을 때 감촉이 좋고,

가시에 찔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공정이 매우 까다롭고 잔손이 간다고 한다.  

못이나 철사를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리고 숯을 지져서 색을 내는 것 외에는

생 숯을 칠하는 등 가공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여름철 땀에 씻기거나 묻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일부에서 전하는 짖궂은 세간화(世間話)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 온다.
 아들 5형제를 둔 노부부가 아직도 잠자리를 같이 한다. 형제가 밖에서 이 모습을 보고 투정을 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 5형제를 두고도 모자라 또 자식을 만들려고 하니 딱하기도 하다.

여섯째가 태어나면 우리만 골탕 먹는다. 업어 키워야 하고 똥오줌 치워야 하니

그 짓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이리하여 5형제는 궁리 끝에 부모를 격리시키기로 작정을 하고

대나무로 가짜 부인을 만들기로 했다.

뒤뜰에 무성히 자란 대나무를 쪼개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 안고 자기에 알맞은 정도의 긴 죽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것을 아버지에게 드렸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5형제가 만들어 준 죽통을

안고 자보니, 아내를 껴안고 자는 것보다 훨씬 시원하고 잠이 절로 들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한없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한편 5형제는 나름대로 여섯 번째 동생이 생기지 않음을 매우 기뻐했다.
 이를 이름 하여 송나라 때부터 [竹婦人], 또는 [竹姬]라고 했다 한다.     

그래서 부모가 쓰던 죽부인은 자식이 물려 쓰지 못한다.

부모가 사랑스럽게 안고 자던 ‘죽부인’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대나무를 잘게 쪼개 길고 둥글게 엮은 벼개형으로 품안에 끼고 자거나

다리를 얹고 자면서 시원하게 여름을 보냈던 또 하나의 부인으로 옛 선인들의 여유와 생활의 멋을

보여준 깜찍한 애첩?의 몫을 톡톡히 해 냈으리라 .
 어떻든 대나무를 여성화하여 죽부인을 만들어 여름 더위를 피해 보려는 지혜는 동북 아시아권

민족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것 같다.

 삼베 홑이불을 씌워 죽부인을 가슴에 품고 한 다리를 척 걸치고 자면 시원하게 잠을 이룰 수 있다.

구멍이 뻥뻥 뚫리고 안이 텅 비었기 때문에 시원함이 유지될 뿐 아니라 대나무의 촉감이

또한 시원함을 더해준다. 이래서 여름 한 철 죽부인을 사용하는 것은 피서방법으로 최고이며,

자식 된 도리로서 노부모에게 죽부인을 선물하는 것이 효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최근 죽부인을 선물하는 자식들이 늘어나 죽부인의 가격도 이제는 매우 비싼 편이다.

 하여간 그 천해 보이는 [竹姬]는 내게 너무도 소중하고 유익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누워서 텔레비전을 볼 때는 목 받침으로 그만이고, 피곤 할 때는 누워서 무릎 밑에 받쳐서

피로를 풀고, 잠 잘 때는 허리를 껴안고 자도 좋아하고, 좀 야하지만 넓적다리 사이에 끼우고 자면

외로움을 덜 수도 있고, 앉아있을 때는 무릎과 가슴 사이에 끼워서 안고 있으면 시원해서 좋고,

삼베 이불 속에서는 내 가슴과 배 위에 올려놓고 꼭 껴안고 있으면 잠이 스르르 든다.
 하지만 중국여자 특유의 거친 피부 때문에 때로는 손을 다치기도 하고 내 옷을 상하게도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기는 하나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이리 안고 저리 안고, 깔고 뭉개고 누르고,

별 짓을 다해도 묵묵히 자기 소임을 다하는 그 [竹姬]가 여름이면 더욱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겨울에는 가치가 떨어져 찬밥신세가 되어 구석으로 내 몰려도 아무 불평없이 자기 신분을

터득하고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竹姬].

 한번은 술이 취해 들어와 그 애첩을 난폭하게 다루었나 보다. 말은 안 해도 얼마나 속이 상했었을까.

오른 쪽에 안고 자는데 잠결에 거칠게 왼쪽으로 옮겨 안으려고 강제로 번쩍 들었다가

내가 실수를 했는지, 술 때문에 힘에 부쳐 제대로 들어 올리지를 못해서 애첩도 화가 났던지 간에

내 가슴위에서 무방비로 떨어지는 죽희를 막지 못하고 애첩의 자중에 의해 그만 내 얼굴을

강타 당하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나는 입술이 찢어지는 불상사를 스스로 만들었다.

 그 때 처음으로 첩 하나도 제대로 못 다루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화가 나서

[竹姬]와 결별하고 싶은 마음이 일순 들었으나, 내 잘못이려니 참고 넘어 갔지만

입술 상처를 밤에 첩에게 맞아서 그렇다고 스스로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竹姬]가 앙탈부리듯 거칠게 뽀뽀를 하는 바람에 입술에 상처가 났다고 변명할 수밖에...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열대야에는 애첩인 [竹姬]가 최고다.
 삼베 홑이불 속에 재웠다가 내가 슬며시 들어가 슬쩍 끌어당겨 안으면 그 시원한 감촉이

본처보다도 더 사랑스럽게 척 안겨 주어 내 잠자리에서 말없는 내조자 역할을 감당하니

이 아니 기특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아내도 미워하지 않고 시앗보기를 적극 권장했는지도 모른다.

 내 사랑 [竹姬]!
 오늘 밤도 우리 찜통 더위 잊어버리고 시원한 밤을 보내 보자꾸나!~
 너의 그 두리뭉실한 몸매를 더듬으며 땀을 식히면서 잠자리에 들고 싶구나,.........

                                             

                                                                  2004. 08. 11.       - 운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