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이야기
내가 섬에 살면서 도대체 이 섬은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망망대해에 이 섬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늘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겼다.
제주도처럼 큰 섬은 제주도 설화에서 보듯 부씨, 양씨, 고씨가 땅 속 구멍에서 솟아 나와 터를
잡기 시작했고. 설문대 할망의 설화가 있듯이 태초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 밖의 크고 작은 섬들은 육지에서 사람들이 들어가 살기 시작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데 유토피아를 꿈꾸며 육지에서 살던 재산을 정리하고 스스로 섬을 찾아 들어간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교통수단도 문제이거니와 태풍 같은 천재지변에 대한 대책과 어류를
제외한 자급자족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섬들의 역사를 살펴보니 그래도 큰 섬들은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대개는
고려시대부터 발견되어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조선 중기부터는 징세를 하기위해 육지에서 관리가
배를 타고 도착해서 섬에 대한 첫 느낌으로 섬 이름을 작명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일제부터 지금까지 관리가 편하도록 행정 명칭이나 관할 관청이 수 없이 바뀌어 왔다.
징세를 하기위해 육지에서 배를 타고 왔지만 돌아가는 길은 파도가 높아서 곧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보통
보름 정도를 머물렀다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섬에 살던 사람들은 조정이나 지방 관청에 스스로 세수를
바쳤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여 관청에까지 로비나 세도가 연결된 세력가는 없고 아주 평범한 평민들이 가난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이 멀리 위험을 무릎 쓰고 징세를 위해 왔단 말인가.
여기서 유추해 보건데, 첫번 째는 고기 잡으러 멀리 나갔다가 섬을 발견했거나, 조난을 당하여 표류하다가
가까스로 생전 처음 보는 무인도에 상륙하여 새로운 섬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아마도 육지에서 징세를 피해서 혹은 가뭄이나 홍수로 거처를 잃고 살 길이 막막한데, 갈 곳이 없어서
막장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배를 타고 온 사람들. 육지에서 죄를 짓고 도망치듯 온 사람들.
아마 이런 부류 사람들이 숨어들어 왔고, 관청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추적관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여간 지금 현재, 섬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육지와 왕래가 없는 고립된 섬이었기에 성씨가
다르면 무조건 서로 결혼을 하여 거의 모두가 서로 친척이고 사돈 간이다. 그리고 가까운 인근
섬과도 혼인을 맺어 외갓집이 인근 섬이고 고모, 외삼촌이 인근 섬에 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교통수단이 발달되고 교육열에 젊은 청년들은 육지로 나가고 늙은 부모들만 섬에서
기장이나 수수 농사짓고, 고기 잡고 굴이나 바지락 캐고, 약초를 캐서 팔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십 수년 전부터 펜션 붐이 일어나서 외지 사람들이 땅을 사서 펜션을 짓기 시작하면서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원주민들은 한 번에 큰돈을 마련 할 수가 없기에 원주민들이 펜션 사업하는
사람은 없고 펜션이나 식당은 전부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서 한다.
하지만 2년 전의 세월호 사건과 지난해는 메르스 사태로 관광객이 별로 없었고, 올 해는 예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는데, 그 것도 여름 한 철 장사이고 육지에서 보다 그다지 큰돈을
버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들은 왜? 이 섬으로 누굴 믿고, 무슨 정보를 알고, 무슨 꿈을 안고 들어
온 것일까.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기회가 될 때마다 집요하게 묻고 파고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신용불량자가 되어 갈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배를 타고 들어온 사람들.
서해바다 저 밑에 지방 출신이 많아서 그 쪽 사람들의 생활력이나 인생관과 개척정신이 강하다는
공통점과 여자 혼자 운영한다거나, 심지어 남자 혼자 운영하는 펜션이 있는가 하면 정식부부가
운영하는 펜션은 없고, 나이 차이가 많은 연하남과 운영하는 펜션이나 식당이 전부이고,
남자는 육지에 전처가 있거나 이혼한 상태. 그리고 여자는 젊어서 한 미모 했고, 혼자서 술집이나
다방, 여관을 운영했었거나 이혼한 경력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륜이었던 아니었던 그들은 한 때 아내나 남편을 두고도 새로운 상대와 죽도록 사랑했었고,
사랑의 도피로 그 동안 모아 논 재산으로 아니면 딸들이 보태주어, 귀찮게 간섭하고,
남의 말 좋아하는 사람들 피해서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로이 둘 만의 달콤한 꿀 같은
사랑을 위해서, 그 옛날 상투 틀고 머리 땋고 치마저고리 입고 노구솥과 숟가락만을 들고 작은 나룻배로
목숨을 걸고 파도를 넘어 섬으로 도망치듯 와서 정착한, 최초의 프론티어 정신의 원주민 선조 남녀처럼
그렇게 섬을 찾아들어 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신용불량자이던 사랑의 도피자이던 노구솥이 아닌 한 밑천 종자돈은 만들어서
배를 타고 들어왔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그 꿈같은 사랑도 시간이 흘러 삶에 부대끼고, 거센 풍파에 시달리고,
그토록 열심히 장사했는데, 처음에 들어올 때 가져온 본전이 2,3배로 늘어나기는커녕 제자리에서
보합세를 끈질기게 유지하고 있고, 때로는 야금야금 곶감 빼먹듯 하다가 찬물에 부랄 줄어들 듯,
통장잔고 숫자가 차츰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게되면 서로 짜증도 나고, 여자는 이제 젊은 날의 외눈박이
사랑에서 새로운 남자를 볼 줄 알게 되도록 시야도 넓어지고 연애관에도 성숙해졌는데...,
더 이상 갈 곳 없는 남자는 살아 남기 위해서 여자 치마끈만을 잡고 있으니 어찌 잦은 불화가 없지 않을까.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져서 무엇 할까 만은 그래도 섬으로 들어 올 때의 그 용기 있는 사랑과
불 불 가리지 않고 불태웠던 그들의 사랑에는 존경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나도 그 입장이었다면 사랑하는 여자와 아무도 모르게 당연히 배를 탔으리라.
이 대목에서 나는 어느 영화 감독이 딸같은 여자 배우와 사랑에 빠져서 미국으로 프랑스로 독일로
밀애를 즐긴다는 이야기가 오버랩되는데, 누구를 욕하기 보다는 먼 훗날까지 그 사랑이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영화감독이니까 능력이 되는 구나, 부러웠을 뿐이다.
내 숙소에서 회사까지 오다가다 마주치는 내 단골 술집이 있는데, 달마다 나가는 술값도 수월찮아서
술을 자제하겠다고 퇴근하면서도 그냥 지나쳐 올 때가 많은데, 손님이 없을 때는 장사 속으로
주인 여자가 내 퇴근 시간을 정확히 알고 내다 보면서 오라버니! 부르며 들어 오라고 호객을 하거나
집에 있어도 술 마시고 싶다거나 놀러 오라고 꼭 전화를 해서 마음 약하게 만든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 남자 놈이 술이 잔뜩 취해서 슬며시 합석을 하더니
날 보고 이제부터 자기 집에 오지 말라며 막말을 하고 시비를 건다. 결국 말싸움이 됐고
또 그들 부부싸움으로 번졌고, 나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던지고 부수고 크게 다투는
그들을 뒤로 하고 나 몰라라 집으로 돌아왔다.
(츠암내, 그래 안가면 되지. 술값도 절약되고 내가 바라던 바다.)
그래서 한 동안 발길을 끊었는데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났다. 나 때문에 그들은 늘 부부싸움을 하고
주사가 심한 주인 남자와 내가 여자 때문에 싸우고 안온다고...하하
그런데 얼마 전에 여자한테 전화가 왔다.
남자가 육지에 물건 하러 나갔으니 술 마시러 오라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초청을 거부 할 수도 없고 마음이 약한 나는
밤늦게 마지못해 갔더니,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웬 남녀가 노래방 기기를
틀어놓고 지치지도 않는지 밤이 깊도록 노래를 불러댄다. 그들도 부부는 아니고 연인사이 같은데,
음치들이 늘 그렇듯이 노래도 잘하지도 못하면서 마이크를 놓지도 않고 서로 잘 부른다고
추켜세우는 꼴이 정말로 눈꼴이 사납다.
나는 치킨에 소맥으로 두어 병을 마시고 내 노래 실력으로 주인 여자와 몇 곡 불렀지만.
그들 노래는 더 이상 듣기 싫기도 했고, 그 들은 어제도 같이 잤기 때문인지 오늘은 밤이 깊었는데도
자빠져 자러 펜션으로 올라갈 기미가 도대처 영 보이지를 않기에,
기다리다 지쳐서 주인 여자가 잠시 안 보이는 사이에 슬그머니 나와 집으로 와 버렸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