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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과거 사랑이야기와 중년의 사랑에 대하여

운명2 2017. 4. 13. 18:23





            내 과거 사랑이야기와 중년의 사랑에 대하여

 

총각 시절에 사내(社內) 연애를 한 적이 있다.

부서는 다르지만 사내에서 연애를 하려면 남들이 눈치 못 채게 명석한 두뇌 플레이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일정한 룰도 정해놓고 사내에서는 전화만 하고 절대 1:1로 만나지

말 것. 회식 자리에서는 옆에 앉지 않고 대각선으로 앉을 것. 서로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대화에 말려들지 말고 자리를 피할 것. 남들 보는 앞에서 가끔은 서로 갈구고 퉁명스럽게

대들기도 할 것. 퇴근 후에 둘이 만나면 낮에 일어났던 일들을 소재로 대화하며 소통 할

것 등 여러 가지 신경 쓰면서 남들을 속이며 연애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스릴이 있고 쾌감도 있고 행복함에 젖어도 보았다.

휴가를 가도 서로 시차를 두고 가서 12일 놀러 갔다 오기도 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미모와 지성의 그녀에게 질투와 시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마타도어를 하게 마련이라서

휴가 갔다 돌아오니 그녀가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 왔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돌았다.

나는 같이 휴가를 갔기에 웃어 넘겼지만, 같이 휴가를 안 갔었으면 그녀가 아무리 진실로

변명을 하더라도 찜찜하고 기분 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내가 순진한 건지. 바보인지 남자는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녀를 아끼고 지켜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안 믿지만)

그래서 아끼느라 같이 휴가 가서도 손만 잡고 잤다.(믿거나 말거나)

그쯤해서 남들이 긴가 민가 의심을 가지려 할 때, 깜짝 결혼 발표를 하려했는데

차질이 생겼고, 그 이유로 그녀는 회사를 옮겼지만 운명적인 인연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 여자 어머니가 나이 차이가 많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해서 결실은 보지 못했었다.

내가 가장 화나고 후회되는 것은 그렇게 아꼈는데, 그 어머니가 인정을 안 해 준다는

것에 대한 보복은 아니라도 그 어떤 반항감이 있었나 보다.

그 여자는 나를 믿었기에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나는 그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곧바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 후로 그 여자가 울고불고 액션을 취하자 그 어머니가 나를 보자는 연락을 몇 번 해왔지만

나는 무시해 버렸다. 내가 그녀를 아끼지 않고 소유욕을 부렸다면 아마도 그녀 어머니가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은 웃기는 일이겠지만, 그때만 해도 여자가 남자와 같이 잤다는 사실 관계만으로도

그 남자한테 시집가야 한다는 부모들의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나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절망감이 나를 더 성급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끼다가 뭐 되고 남의 좋은 일만 시킨다는 말이 진리 아니던가.

그 쓰라린 경험이 여자를 대하는 가치관이 변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고...

내가 결혼한 뒤에도 그녀가 몇 번 나를 찾아왔었고, 그때는 어떤 복수심 같은 정복욕에

손만 잡고 잘 수는 없었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는 늦었었다.

내 조카가 연애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때 조카가 자기편을

들어달라고 나한테 상담을 해왔을 때, 나는 딱 한마디 했다.

빨리 임신을 시켜라.” 하하

내 말대로 조카는 임신한 채 결혼식을 올려 잘살고 있다.

나도 가끔 옛 회상을 하면서 내가 그때 너무 경솔하게 성급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녀를 임신 시켜서 나도 결혼할 수 있었으면 내 삶은 또 어떻게 변할 수 있었을까

그 과거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고는 힘없이 속으로 웃곤 한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채팅이나 각종 동호회로 많은 사람들이 교류하게 됐다.

남녀 간의 관계는 자연의 섭리로 자주 접하다 보면 좋은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서로의 향기에 취해서 사랑의 감정이 싹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다른 사람 이목을 피해서 은밀하고 위대하게 해야 할 것 같다.

사내 연애를 하듯 일정한 룰을 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스러워야 하며, 남들이 보기에 친한 친구나 선후배 또는 고향 선후배 사이정도로

가까이 지낸다는 정도로 긴가 민가 인식되어야지 더 이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도 있다. 남자들은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지만 일단 여자들한테 소리가

들렸다면 그 것으로 그들은 아웃되는 경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경솔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공표하거나, 언행을 자제하지 못하고 소문이 요란한

행동을 일삼으면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일순간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수가 있다.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를 어느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지구와 달이 자전과 공전을 하듯 일정한 속도와 거리를 유지하며 적당한 간격을 두고

돌아야 한다고 한다. 그 것이 로맨스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륜이란다.

이 말은 지구가 공전을 하듯 그 간격과 속도를 유지 못하면 별똥이 되고 우주 미아가

될 수도 있듯이, 서로를 인정하고 인내하며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프라토닉러브한

사이면 로맨스고, 무리한 욕심을 내고 그 속도와 간격을 유지하지 못하고 프로이드적

관능적인 사랑에 빠지면 불륜이란 말로 나는 이해한다.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 맞지만, 중년의 사랑은 명석한 두뇌로도 해야 한다.

사랑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여서, 값싼 지분 냄새나는 사랑보다는 나이가 들수록

중후하고 고급스럽게 서로 피해나 부담이 가지 않도록 상대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서로 도움이 되는 플러스

사랑으로 곱게 승화된 아름다운 사랑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로맨스일 것이다.

불륜이던 로맨스이던 남의 사생활에 질투하고 시기로 왈가왈부하고 디스하며

심하게 매도할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 그 것은 순전히

그들의 책임으로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한 말을 기억하는데, 내 남편도 챙기기 힘든데 그 골치 아프게 신경 쓰며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그것은 자기 능력이 그만큼 밖에 안 된다는 변명 같은 것 아닐까.

수준 높은 사람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사랑은 자기 의사와는 별개로

어느 날 갑자기 풍덩 빠질 수도 있고 그 상대 향기에 중독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남녀 간의 만남은 성()을 매개로 더 가까워지고 더 돈독해질 수도 있지만 그 것이

한 번 틀어지면 추하고 악취를 풍기게 된다는 사실도 그래서 알아야 한다.

불륜은 사회에 지탄을 받지만, 로맨스는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존경받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무게를 가지고 추하지 않고 싸구려 답지 않게 노력하며

중후하고 럭셔리하게 향기 나는 대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 것이 또한 중년의 행복 아니던가.

 

레바논 시인 칼릴 지브란의 시를 나도 읊어 본다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참나무처럼 굳게 서서 멀리 삼나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2017.  0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