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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박물관

운명2 2017. 11. 30. 21:20


실연 박물관

 

소설가 권지예님의 말에 의하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는 실연박물관이 있단다.

실연한 사람들이 사랑했던 연인과 함께했던 물건들을 이별을 기념하여

기부하고 그 러브 스토리와 함께 전시하는 박물관이란다.

우리나라도 실연박물관이 생기면 좋을 것 같은 생각에 내가 돈이 많다면

실연박물관을 만들고 싶어도 된다.

남산을 비롯한 유명 관광지에 사랑의 맹세로 채워, 걸어놓은 자물통이

수 천, 수 만개를 본 적이 있거니와 그 자물통의 주인공들이 전부 사랑에

성공했으리라고는 믿지 않기에 그들의 이별 사연을 그들이 주고받은

선물들과 함께 진열하고 사연을 공감하고도 싶어진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성숙해지게 마련으로 많은 사랑을 하면서 상대에게

차이기도 하고 때로 차기도 했을 것은 당연할 진데, 실연을 당한 사람으로는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아쉽고 그립기도 한, 추억의 잔잔하고도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해 보며 한 때 행복했었던 시간을 그려보는 기념이 될지는 몰라도,

반대로 본의 아니게 내가 먼저 배신을 하고 찼던 사람으로서는 후회스럽고

부끄럽기도 할 수 있으며, 때로는 화가 날 수도 있을 텐데,

그들에게도 실연박물관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둘이서는 열렬히 사랑했는데 부모나 환경에 의해서

이별을 한 연인들에게는 훗날 다시 손잡고 함께 박물관을 찾아 옛 사랑을

회고 해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소설가 권지예님의 말을 빌리면 사랑은 변하는 것이란다.

사랑도 인생처럼 생로병사가 있어서 모든 관계와 인연에도 끝이 있고,

이별은 사랑의 완성일지도 모른단다.

사랑은 오히려 이별했을 때 더 잘 보이게 마련이란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영원이란 존재하지도 않으며 사랑도 끊임없이

소생하고 소멸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연의 아픔을 간직한 채, 또 다른 사랑을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또 소멸되고...

사랑도 완전히 익으면 떨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등산을 좋아해서 십 수 년 전 등산복이나 배낭, 썬그라스가 많다.

등산복도 유행을 타서 젊은 날에는 청바지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스타킹이면

되었던 것이 섬유 산업 발달로 신축성있는 검은색 바지가 나오고

자켓도 고어텍스에 기모가 유행이더니 요즘은 색상이 다른 천으로

누더기 바지처럼 만들고 무릎 쪽에는 겉으로 실밥이 보이는 등산복이 대세다.

그 것도 바지통이 점점 좁아지더니  유행이 10년 주기로 바뀌는지

내년부터 다시 바지통이 넓어지는 추세일거라는 기사를 본 것같다.

이사할 때마다 아내는 안 입는 옷은 버리라고 성화지만 나는 버릴까 하다가도

주책스럽게도 다시 집어 든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그 옷을 보면 사연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하던,

가끔 유행 철 지난 그 오래된 등산복을 한번은 입고 산을 찾는다.

그래야 그 옷을 선물해준 사람에 대한 예의 일 것도 같고,

나름 기억을 하고 싶은 마음의 책무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실연의 아픔과 고통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그 통증은 맞지 않는 신발을

신었을 때의 고통 같은 것 아닐까 싶다. 걸을 때 마다 느끼는 통증도

신발을 벗고 나면 그 고통은 까마득히 잊어버리듯,

실연의 아픔도 내가 벗어버리고 나면 그만이다.

물론 그 신발을 볼 때 마다 통증의 기억이 살아나겠지만,

그 때는 미련 없이 신발을 버리면 그만이다.

사랑의 아픔도 조금이나마 좋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아픈 것이지,

좋은 기억이나 잠시나마 행복한 기억이 없이 아주 지독히 아팠다면

일부러라도 잊기 마련이다.

여기서 다시 권지예의 말을 되새겨 본다.

실연과 이별의 고통은 죽을 만큼 끔찍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극복하며 우리는 성장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모든 고통스러운 이별에는

사랑하던 행복한 순간이 씨앗처럼 들어있다.

이 말은 사랑이 소멸되더라도 화석처럼 그 행복했던 씨앗은 남아있어

언제라도 다시 싹이 터서 부활할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사랑도 Recycling 일 것만 같다.

이제 나도 철 지난 등산복은 과감하게 크로아티아 박물관으로 보내던지

아님 버리고 새로 구입해야 할 것 같다.

                                                                        2017.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