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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와 하롱베이

운명2 2014. 9. 6. 10:40

                              하노이와 하롱베이


괜히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에 하노이에 있는 친구가 초청을 했다고 다른 친구들을 꾀여서 마누라 떼어놓고 남자들 끼리 부담 없이 여행을 가자고...그러면 여자들끼리 여행 온 사람들도 많다고...그래서 추억 만들기를 하자고 전적으로 내가 주선해서 가까운 친구 셋이서 여행길에 나섰다.    


베트남이라면 40여 년 전 월맹의 베트콩이 생각나서 어쩐지 약간 거부감이 생기고 공포감이 생겼는데, 막상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우리의 60년  대를 연상시키는 복고풍에 친근감까지 들었다.

공항에서 하롱베이를 향해 달리는 버스에서 보이는 풍경은 어릴 때 듣던  정글은 보이지 않고, 들판과 작은 저수지에 하얀 오리만 가득한 시골길이었는데 사회주의 국가답게 도로변은 공유한다는 개념으로 도로변에 접한 부분이 작고 뒤로 긴 직사각형 같은 건물들이다. 

그리고 산이 없으니 무덤을 밭에 쓴다고 하는데 가족묘들이 무더기 작은 탑 같기도 한데, 풍수지리적으로 습한 곳이기에 좋지 않을 것 같기만 하다.

이곳은 옛 월맹 땅이고 우리가 어릴적 부터 익히 들어왔던 다낭을 비롯하여 남쪽의 월남은 베트콩이 숨어서 전쟁을 하던 정글이 많은가보다고 막연히 생각해 본다. 남북으로 긴 나라여서 여기서 호치민시(옛 사이공)를 가려면 차로는 3박 4일이 걸린다던가, 비행기로도 4시간을 가야 한다니 얼마나 긴 나라인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여기나 중국이나 버스는 왜 이리 늦게 가는지 답답한데 중간에 한국 사람이 운영한다는 휴게소에 들리기도 했지만 지루하게 하롱베이에 도착하니 멀리 바다 위로 섬들이 다닥다닥 보이는데, 먼저 사람들이 순박하다는 것을 피부에 느낀다. 도로변에 풀들도 우리가 화분에 기르는 풀. 미모사라고 하던가.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손으로 건드리면 잎을 접는, 그런 풀들이 지천이다.

아침부터 비행기 타고 하롱베이 도착하니 저녁이어서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어디가나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 있어서 나는 전혀 걱정이 안 된다. 삼겹살에 월남 쌀국수에 볶음밥에 맛있기만 하다. 우리는 각자 서울에서 소주를 잔뜩 가져왔기에 끼니때마다 큰 거 한 병 씩 비운다. 

그리고는 수상 인형극이라나  그 것을 보려고 어느 호텔로 갔는데 여기서도 여행사는 달라도 하롱베이에 온 우리나라 관광객은 전부 모였다.

커튼 뒤에서 사람들이 물위에 인형이나 동물들을 조종하는데, 내용은 하롱베이에 내려오는 전설이며 수상인형극도 이곳에만 전수되는 전통이라던데 인형을 조정하는 기술은 재미는 있었지만 그저 그랬다.


2일 차 아침에 하롱베이에서 유람선을 하나 전세내서 타고 바다로 나간다.

넓은 바다가 파도도 없이 잔잔하고 고요해서 호수가 아닌가 생각했더니 멀리 하이난 섬이 파도를 막아주어 잔잔하다고 한다.

가이드의 옵션 요청에 돈을 더 내고 배위에서 해산물을 실컷 먹으며 우리의 술(소주)도 마시고 노래방 기기로 노래도 부르며 전혀 낯설지 않은 분위기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섬들의 연속이다. 중국 장가계의 산들이 이 바다위에 솟아 있는 것처럼, 아니면 계림을 크게 확대한 것처럼 기묘한 섬들이 3,000개가 넘는다고 하던가. 하루에 섬 하나씩 올라간다고 치면 10년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섬이 많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뒷소문에 의하면 가이드가 생선을 가져오는 곳이 자기가 운영하는 곳이라던가. 베트남 여자와 결혼해서 그 곳에 산다는 가이드 농간에 가이드만 배불려 준 것 같아서 먹기는 잘 먹었지만  사기당한 것 같은 개운치 않은 기분이다.

기묘한 바위들을 지나 큰 바위 섬 두 개가 키스하듯 붙어있는 키스 바위에서 사진촬영도 하고, 작은 보트를 갈아타고 바위 산 밑을 통과해 들어가니 사방으로 동그랗게 막혀있는 바다가 나온다. 마치 분화구 같은데 원숭이들이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과일을 먹으려고 잔뜩 몰려있다. 어릴 적 본 적이 있는 영화, 해저 2만 리에서 잠수함으로만 드나드는 이런 비밀 아지트를 본 것 같았다. 아마도 여기서 촬영하지 않았을까?

띠톱섬에는 해수욕장도 있어서 해수욕하는 사람들도 많고 정상에 올라보니 하롱베이 섬들이 한 눈에 보인다.


하롱베이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주민들의 평온한 모습. 어쩌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도 보이지만 그저 평범한 일상복으로 피서를 하는데 우리도 60년  대는 해수욕장이 저런 풍경이었으리라.

해변의 풍물시장 같은 곳도 구경하고, 마사지를 받는데도 우리말을 알아듣고 조금은 대화가 가능한 탓일까 친근감이 든다. 중국이나 태국 아가씨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으로 가만히 보니 그들의 순수한 미소와 친절하게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며 편안하게 해주는 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을 부러워하고 한국에 가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으니 측은한 마음도 드는데, 우리나라의 위력을 실감도 해 본다. 알고 보니 이 곳 사장도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한국 기업인이 세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지 않던가.


다음날은 하노이 박물관과 호치민 기념관 관람이었는데, 나는 왠지 거부감이 든다. 40여 년 전, 자유 수호를 위해 파견된 우리 파월 장병들을 많이 희생시킨 장본인 아니던가. 가이드로부터 미국이 전쟁에서 최초로 월맹한테 패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으며 저 남쪽 밑으로 월남 땅. 사이공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친다.

이념의 혼란기에 내란을 겪었던 세대는 나이가 이제 6,70대가 되었고, 지금 젊은이들은 전쟁도 기억 못하겠지만 일찍이 자유 경제를 받아들여 호치민시는 경제 도시로 하노이보다 더 발전되었다던데......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전쟁을 했단 말인가. 죽은 호치민이 다시 살아난다면 그 당시 전쟁의 불가피성을 주장할까. 아니면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오판을 시인할까 궁금해진다.

어쨌든 하나의 나라로 통일은 되었다지만, 월남이 승리했다면 경제는 더 빠르게 발전되어 선진국으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호치민이 검소하게 생활했다는 기념관을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보고 나오면서 자신을 팔아 먹고사는 지금 베트남 국민들에게 그래도 자랑거리일까.    

 하노이 시내 빌딩들과 고층 아파트를 보면 삼성. 대우. 포스코. 선경. 현대 등 우리 대기업들의 간판이 눈에 띄고, 롯데리아, LG, 삼성들의 상점 간판들도 보이는 걸 보면 뿌듯한 기분도 든다. 

그만큼 우리 국력이 크고 대단해서 친구부인이 교장으로 근무하는 하노이 한인학교 학생들이 초중고 합쳐서 600명이 넘는다고도 한다. 죽은 호치민은 우리 대한민국이 이 곳 하노이뿐만 아니라 저 남쪽 사이공.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딴 호치민시에도 한글로 표시된 중고 노란 샛별 유치원차량이나 쌍문동 서울시내 노선버스가 그대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자랑이듯이, 우리의 맹호와 청룡부대가 철수한지 40여 년 만에 대한민국이 점령하듯 몰려와 경제 건설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살아서는 예측 못했을 테지만, 지금쯤은 알고 있을까, 묻고 싶어진다.


그 밖에도 천연동굴도 갔었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 때문인지 기묘한 석상들에게 세종대왕. 김구선생. 이순신장군. 성모상 등 우리말로 가이드는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네 동굴들과 별 차이는 없지만 여기는 석회암이 열에 녹아 생긴 동굴이라던데, 가끔씩 좁은 틈으로 밖이 보인다는 것이 이채롭다.

저녁은 하노이에서 가장 큰 뷔페식당에서 하는데 200여 가지 음식이 나온다고 가이드는 자랑했는데, 막상 가보니 도떼기시장 같았다. 하노이에 와있는 한국관광객은 전부 이곳으로 모이고 우리처럼 무슨무슨 기념으로 모처럼 가족끼리 나온 하노이 시민들과 젊은 남녀들로 들끓었고, 불에 오리날개 등 이상한 것들을 굽는 곳에서는 연기가 그윽했다. 주로 쌀국수 종류와 조개 종류. 느끼한 베트남 음식들이었는데 막상 여기서는 내가 마땅히 먹을 것이 없었지만, 베트남에 있는 동안 삼겹살은 정말 먹을 만 했다. 삼겹살과 야채를 집어 와서 배낭에서 소주를 꺼내 친구들과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는데...

거기서 앙코르와트를 다녀온다는 초등 동창 부부를 만나게 될 줄이야.

하노이도 좁다는 생각을 해보며, 하노이 관광객은 전부 이곳으로 오니 가능한 일이다. 반가움에 우리는 소주를 서너 병 더 마시고 작별을 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보니 코리아타운인지 간판이 전부 한글이었다. [맥주와 치킨과의 만남]. [해물파전 막걸리]. [소담채]. [포장마차]. [쭈욱! 한잔]. [그냥 갈 수 없잖아]. 등 서울의 먹자골목을 연상시키는 간판들을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는 물론, 아프리카. 남미. 중앙아시아. 몽골. 중동. 유럽 등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어 한식당은 어딜가나 존재 한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노이는 산이 없는 넓은 분지에 호수의 도시인 것 같다. 호수가 얼마나 큰지 관광용으로 개발한 골프카트 같은 9인승 차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1시간도 더 걸렸다.

호숫가에는 자리를 깔고 술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을 파는 노점 같은 곳이 계속 이어지는데 젊은 남녀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앉아서 데이트를 즐기는데 하노이 젊은 남녀들은 전부 나왔는지 그들 아베크족도 끊임없이 호숫가를 차지하고 있고, 더러는 우리네 호프집처럼 거리에 빨간 의자와 테이블을 내어놓고 술을 파는 곳도 보이고, 술집에서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는 단란주점같은 곳도 보이고, 낚시를 하는 사람 등. 오토바이를 탄 연인들은 계속 찾아들고 있었는데, 신기하기만 하고 저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고, 그 다음은 어디로 갈까 궁금하기만 하다. 


하노이 거리의 출퇴근 시간은 오토바이 천국이다.

하긴 여기보다 더 큰 자카르타 시내도 오토바이가 많았지만 차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여긴 오토바이 비율이 훨씬 많다. 남자는 물론 작은 소녀들부터 하이힐을 신고 스커트를 입은 숙녀부터 여자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들은 그 많은 오토바이들과 부딪침 없고 차와도 충돌 없이 곡예 하듯 운전하는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고 여자들이 예쁘게 보이기만 한다. 여기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뚱뚱한 여자는 보이지 않고  모두 날씬한 몸매의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 어려보이기도 하고. 친절하기도 해서 아오자이를 입은 날씬한 여자가 기꺼이 사진 촬영에 응해주어서 나는 연인처럼 다정히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 행운도 누렸다.

그런데 하나같이 여자들 코는 비슷비슷하게 생겼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생활환경과 경제사정이 좋아져서 전부 차량을 구입한다면 교통상황과 유류 값은 어떻게 변할까. 괜한 걱정도 해보며 이 많은 오토바이에 비해 주유소는 보이지 않아 아마도 집에 프라스틱 통에 휘발유를 왕창  사다 놓고 쓰는 것 같다. 여기서 오토바이 판매점이나 수리점을 해볼까 싶기도 하고. 베트남 사람들한테 정이 들어서 인지 우리의 대기업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한화. 얼마 전에 출감했다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등이 이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한다던데, 거기서 일해 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하노이에서 제일 크다는 마트에도 들렸는데 우리의 백화점 지하층에 있는 식료품 코너와 다름없이 우리 물건도 많이 눈에 띈다.

나는 다람쥐똥 커피를 집어 들었고, 베트남 술도 한 병 샀다.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항상 들리는 곳이 라텍스 매장. 실크매장. 진주 매장인데 가이드를 위한 행사 같기만 하고, 들어가면 나가지도 못하게 붙들어 놓는 것이 난 싫다. 중국의 농산물 매장은 싼 맛에 이해하지만. 더구나 여긴 한국 사람들이 하는 매장이어서 한국 사람들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노이에서는 노니 매장에도 들렸다. 노니나무가 뽕나무과라던데 여기서는 하늘을 찌를 뜻한 힘의 원천이라고 한자로 파극천(破戟天)이라고 한다했다. 우리의 야관문(夜貫門)같은 성능인가 본데, 노니나무 열매로 술도 담그고 뿌리로 발효액도 만들고 분말도 만들고 비누도 만든다고 한다. 성인병 예방부터 만병통치약처럼 달콤하게 선전하는데, 비싸기만 해서 선뜻 나서는 사람들이 없는데 나이 들어 힘이 없고 혈색이 안 좋아 보이는 사람들은 아내의 권유로 구입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시식으로 주는 노니 술 한 주전자를 체면 불구하고 다 마셔버렸다.


사족.

인천에서 베트남 가는 비행기에서 내 옆 좌석에는 작고 젊은 베트남 여자가 앉았다. 학생 같아 보이더니 기내에서 화장을 하는 것을 보니 숙녀다. 친구들 부러움을 사면서 기분이 업 됐는데, 이 여자는 우리말을 전혀 못 알아듣고 할 줄도 몰라서 내 짧은 콩그리쉬로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들뜬 기분으로 하노이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기다리다 보니 부부 아니면 어른들 모시고 온 효도 관광객이 전부여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친구들한테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항상 여자들끼리 온 팀을 만났었는데, 운도 지지리 없어 우리들끼리 술만 마시고 온 것 같다. 친구들한테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서울에서 나는 또 술을 사 주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