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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 유감

운명2 2015. 9. 13. 09:30

                               고스톱 유감

 도박사들의 활약을 그린 외국영화 [스팅]에서 폴 뉴먼과 레드포드의 속임수는 압권이었는데

정말 멋지고 통쾌했었다.
 도박이 국어사전에는 [노름. 돈내기]로 나와 있고 국어학자는 도박의 원 뜻을

[바둑, 장기로 내기하는 것] 이라 했다. 아마도 옛날 화투가 생기기 이전에 생긴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요즈음 도박하면 화투를 연상하게 된다. [망국의 병]이라는 도박이 어찌나 성행하고

우리 생활에 판을 치던지 한 대학에서는 도박을 놓고 세미나를 열었다 하고 많이 알려진 대학교수들도

 낀 65명의 문인들로 구성 된 [한국 수필가 협회]가 도박을 공통 주제로 한 권의 수필집을 발간했다고 한다.
 글쎄, 나는 아직 읽어보지도 않았고 읽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도박을 놓고 갑론을박했던 모양인데

상갓집의 으례히 밤샘 화투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할아버지, 할머니, 남녀노소 구분 없이 고스톱을

못하는 사람이 없으며 달리는 기차나 배 안은 물론 역 대합실이나 공항은 차치 하고라도 비행기 안 뒤쪽

화장실 앞에 신문지를 깔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스톱 판을 벌여 외국인들의 눈쌀을 찌푸렸다는 보도를

접하고 보니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요즘은 주부들이 더 극성이어서 억대 주부 도박단도 심심치 않게 걸려들고 어느 공원이나 마찬가지로

공원에 나가보면 반드시 고스톱 치는 주부들을 볼 수 있고 양재천 산책길이나 모래내 산책길,

중랑천 산책길의 그늘진 곳에서는 어김없이 신문지를 펴고 고스톱 치는 주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 하물며 유원지에서 고스톱 치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은가.
 요즘은 또 컴퓨터 게임으로 고스톱을 쳐서 점수를 올리는 재미에 푹 빠진 주부들도 부지기수다.
 고스톱은 또 시대 상황을 반영해서 80년대는 김재규 고스톱도 나오고 모 대통령 고스톱이 나오더니

몇 년 전에는 소통령 고스톱도 나왔었고 요즘은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로 홍단 3장이면 싹쓸이 할 수 있는

고스톱도 있단다.
 이렇듯 고스톱도 지방과 계층, 장소, 치는 사람에 따라 룰도 제 각각 달라서

이제는 [전국 고스톱 규칙 통일안]도 나오고 [고스톱 손자병법]이란 책도 나왔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다.

 나는 본디 고스톱은 즐기지 않는데 호기심에서 [고스톱 손자병법]을 얼핏 보았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비풍초똥팔삼 순을 믿지 마라.
 2. 입이 방정(설사)맞으면 패도 방정을 떤다.
 3. 뛰는 놈(초출)을 잡는 것도 때가 있다.
 4. 가슴과 무릎사이에서 고와 스톱을 결정하라.
 5. 여당(선)은 야당(회)할 각오를 하라.
 6. 포기하는 것도 전략이다.
 7. 수비는 최선의 공격이다.
 8. 적의 초구 2장을 기억하라.
 9. 적의 노획품의 경로를 파악하라.
10. 홧김에 서방질 하지 마라.
11. 승부에 관계없는 패는 돌려라.
12. 영감은 적중한다.
13. 굳은 패로 상대방의 작전을 교란시켜라.
    등등이었다.
 이 방법만 잘 터득하면 돈은 잃지 않을 듯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스톱은 속임수를 쓰는 도박사가

아닌 이상 통계에 의한 확률과 상대의 평소 화투치는 습관이나 심리 파악이 우선되는 게임이므로 많이

해 본 사람(경험)만이 상황판단이 적중해서 이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금액이 작은 노름이라도 고스톱을 해서 돈을 잃게 되면 성인군자라도 기분이 상하는

일이고 보면 평소에는 좋게만 생각되다가도 노름을 같이 해보면 여태 느끼지 못하는 그 사람의 단점이나

이기적인 추악한 일면을 보게 되어 씁쓸해진다.
 단 돈 몇 천 원에 생명이 걸린 것처럼 그토록 얌체같이 마음이 확 변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그 사람의 본성을 알려면 같이 노름을 해보라고 옛 사람들이 일렀던가 싶다.

 자기만 죽으면 그만이지 쌍쌍파티로 엮어 설사를 유도하는 악취미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잔뜩 수입을 올리고도 겨우 요것 밖에 못 땄다며 돈을흔들어 대어 돈 잃은 사람 가슴에 불 질러 약을

올리는 사람도 있고 초반 득점으로 횡재해 놓고 현상 유지책으로 결장하기 일쑤다가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고 줄행랑치는 도둑기질의 사람도 있다. 또 수입 올릴 때마다 배춧잎은 슬금슬금 지갑 속에 넣어

감추고는 잃었다고 오리발 내미는 오리발형. 자기 만수일 때는 일절 개평도 없다가 남의 만수에는

실업수당 뜯어 가는 뺀질이형. 돈 잃었다고 끝나지 못하게 계속 더 하자고 우기는 물귀신형. 끝나자마자

개평 떼일까봐 화장실 가는 척 얼른 사라지는 좀팽이형 등 인간성도 가지각색이다.
 미국의 쟈니 윤이 고스톱의 독일병정이야기를 해서 한바탕 웃은 적도 있지만 고 아니면 광만 판다고

열고로 독일 병정처럼 끈질기게 쫒아 오는 다혈질도 있다.

 도박이 아닌 오락으로서 시간을 즐기기 위해 명절이나 큰 일에 친척들이 모여 고스톱을 즐기는 것은

좋은데 고스톱 용어가 왜색에 저속하고 속어가 많아 듣기가 거북할 때가 많다.
 요즘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올케와 시누이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고스톱이 이루어지는데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어머니, 빨리 죽으세요' 하면
 ' 내 나이가 몇인데 벌써 죽느냐.' 고 무광패를 가지고도 오기로 치며
 '너는 왜 맨 날 먹고 싸기만 하냐.' 하기도 하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가 좋을 리   없다.
 나는 고스톱을 치면 너무 순진해서 바닥 패를 앞사람이 먼저 먹을 까봐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손이 덜덜 떨려서 상대에게 작전을 전부 노출시키고 먹을 것이 없어 화투장을 내던지면 두 장 가지고

한 장 내는 것까지도 상대가 알고 내 딴에는 머리 쓴다고 굳은 패를 돌리면 있으면서 돌리는 것까지

내 패를 보지 않고도 훤히 꿰뚫어 보니 기가 막히고 무서우며 기분 나빠 못 하겠고 더구나 간이 작아 고는

할 수도 없고 무조건 점수 나면 스톱이며 광이나 팔다가 회라서 어쩔 수 없이 쳐서는 피박,

광박에 쓰리고까지 맞아 만수로 한 번에 다 날리고 열 받아 스트레스 받으며 매 게임 끝날 때마다

돈을 꺼내 대차대조 계산해 보지 않으면 안쓰러워 못 견디는 좁쌀족이고 보면 고스톱은 천성적으로

못할 팔자다.
 또 직장에서 상사와 같이 고스톱을 해보면 어차피 사교 고스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상사는 틀림없이

열고로 나오니 확실한 패를 가지고도 젊은 나이에 눈물을 머금고 죽어야 하고 그렇다고 함부로 광도

못 팔고 돈을 따면 따서 눈치 보여서 부담되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기분 맞춰 잃어주자니 속이 쓰리고

아파 재미없는데 누구나 한 두 번은 그런 경험을 가져 보았으리라.
 더구나 고스톱을 해보면 비흡연자로서 담배연기에 눈이 따가워서 못 견디고 여기저기 사방 담뱃재에다

고운 말을 두고도 막 되어 가는 세상처럼 일본식 용어에다가 욕설이 난무하는 데야 견딜 재간이 없다.
 하긴 서부 영화나 홍콩영화의 도박판에서 목숨을 걸고 총을 쏘고 죽고 죽이는 일이 다반사이고 보면

우리네 화투판에서 언성을 높이고 욕설로 다투는 것은 애교로 봐주어야 할까.

 밤 새워 고스톱을 해 본 사람은 알리라. 눈은 충혈 되고 얼굴에는 끈적끈적 개기름이 흐르며

수염만 덥수룩하게 자라났고 노름꾼이 죽으면 무릎부터 썩는다고 무릎이 저리고 웬 그리 원수가 졌다고

화투장을 내리치는지 그 어느 운동보다도 체력 소모가 커서 팔이 빠지도록 아픈 경험을 가졌으리라.

거기에 담배연기에 찌든 구겨진 옷, 그래서 부인들이 남편의 외박을 확인하려면 담배 냄새와 바지의 주름을 보면 안다고 했다.
 우리 한국 사람은 모이면 놀 줄 몰라 도박을 하게 된다고 외국 사람이 지적했듯이 외국 사람들은 입으로

놀 줄 아는데 반해 실제로 우리는 너무 놀 줄을 몰라 서로 훔쳐보면서 속이고 뺏으려는 고스톱을 즐길까

모르겠다.
 나는 내 돈 잃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옆에서 왜 안 풀어주느냐, 왜 안 짜르고 돌렸느냐, 왜 그걸 냈느냐,

경멸하는 듯한 잔소리가 기분 상하고 민폐 끼치기 싫어 고스톱은 안 한다. 다만 내 경험으로는 고

스톱보다는 포커가 더 재미있었다.
 민폐 끼칠 일없고 개인 실력과 행운으로 Straight - Flush의 숫자와 꽃이 착착 맞아 나가는 그 기분,

더구나 로얄 스티플의 경우는 정말 거선의 기관과도 같이 가슴 뛰는 일이다.
 그러나 포커보다도 마작이 또 한 신사적인 매너 게임 같고 무지 무진장한 수에 흥미로와 보여

요즘 칠대작, 당요 , 대사만, 삼앙고, 도이도이 등 판수 계산하는 법 외우기에 바쁘다.

 하지만 도박은 무엇을 막론하고 머리를 짜내는 긴장과 노름꾼이 손을 못 떼는 그 쾌감,

어느 여자 정신과 의사는 그 쾌감을 오르가슴의 일종이기에 남자들이 가정을 버리고 노름에 빠진다고

진단했었다.
 그러나 그 끝에는 반드시 공허한 허탈감이 오고 [고스톱 손자병법]에도 부제를 100전 99승을 위한

비법이라고 1패를 남겨 둔 데는 노름을 하면 결국 모두가 잃는다는 뜻이고 보면 고스톱은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굳이 명절 등에 친척들과 모여 놀 때는 화투보다는 윷놀이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점잖게 돈내기가

아닌 간단히 먹기 내기로 치는 화투가 좋지 않을까 싶다. 
                                                                                            1987. 06.   ( 운명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