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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과 아내와 나

운명2 2015. 9. 13. 10:11

                            퇴직금과 아내와 나

  요즘 일본에서는 황혼 이혼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좋지 않은 것들은 금방 따라하는 우리나라도

황혼이혼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어느 70대 노파도 십 억대 이혼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하는데 평생을 내조해서 수십 억 재산을

모았지만 이제 더 이상 구박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혼 사유였다고 한다.
  퇴직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해 타산적으로 참고 살아오다가 정년이 되어 퇴직금을 받고 나면

별 볼 일 없어지니 여자가 이혼을 요구한다는데 정말이지 끔찍한 느낌이 든다.
  죽도록 가족을 위해서 평생 일해 왔는데 더 이상 활용 가치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용도 폐기되는 삭막한

삶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정부는 공기업매각과 연봉제를 실시한다고 퇴직금을 강제로 지급했다. 준비된 대통령이고 뭐고

통치자 한번 잘못 뽑으면 국민에게 고통만 준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인했지만...나 보고 배부른 소리 한다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남들은 퇴직금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다들 정확히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집을 구입했다던가, 새 차를 뽑았다 던가 각자 필요한 곳에 사용했겠지마는 퇴직금은 절대로 아내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노선배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기도 한데 그렇다고 나는 특별히 사용처가 있은

것도 아니고 재테크에 능해 투자할 곳도 찾지 못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어디서 들었는지 퇴직금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 아니가. 아내는 자기도 내 퇴직금의

절반은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나 의무가 있다나
뭐, 어쨌다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조합 아파트이기에 소문을 들었으리라 믿지만 몇 동,

몇 호도 그렇게 했다던가.
  하지만 그 것으로 다투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럼 내가 결혼하기 전 총각시절 4년은 제하고 나머지를

반반 나누자고 하려다가 계산 방법이 복잡할 것 같아 내가 조금 손해 보았다 치고 절반씩 나누기로 합의해

버렸다.

 아내는 반반씩 나누어 가지고 무슨 수를 쓰던지 이 다음에 누가 얼마나 더 불렸는지 내기하고 확인해

보자고 했었는데 어차피 내가 우긴다고 해도 내가 질 것은 뻔한 일이기에.
  그런데 아내는 퇴직금을 받고 나서부터 목소리가 더 커지고 부쩍 바빠지기 시작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던 어느 증권회사 광고를 믿었는지 통장도 여러 개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주식그래프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봉사활동을 다닌다면서 내게 허락은 커녕 통보도

없이 외출이 잦았기에 부동산이나 주식투자 등 무슨 재테크 강의에도 나가는 것 같은 눈치였다.
  한 편 나는 너도 나도 주식을 하고 주식을 인하면 왕따라도 되는 것 같아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덩달아

시작했다가 3분의 1토막이 되고 말았다.
  퇴직금을 조금 일찍 주던지 늦게 주던지 받은 시점이 나빴던 탓도 있지만 종합주가가 올라갈 때도 내 것은 빠지고 종합주가가 떨어질 때는 당연히 내 것도 떨어지고...
  누구는 꿈에 호랑이를 때려잡아 온통 피범벅이 되는 꿈을 꾸고 난 다음 산 주식이 사자마자 온통 뻘겋게

상한가를 연속 쳐서 몇백을 먹었다고 하던데 나는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올라가며 손 절매한답시고 헐값에

매도하는 등 악순환의 연속이니 확실하고 건전한 놈 하나만 가지고 한 바구니에 담을 것을 괜히 계란은

나누어 담는 다고 분산 투자했다가 몽땅 상해버려 주식에 문외한이면서 시작한 것이 잘못이지만 억세게

운도 따라주지 않아 답답한 나머지 역술가에게 문의해 도사가 점찍어 준 것도 욕심이 과했던 탓에 타이밍을 놓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도사한테 문의했더니 주가는 떨어졌어도 팔지

않았으면 아직 손해 본 것은 아니므로 처음 샀던 그 가격이라 생각하고 오를 때까지 기다리라던가.

 주식은 도박으로 고스톱과 똑 같아서 3점씩 먹다가 잃을 때는 흔들고 피박에 광박을 맞아 한 순간에 다

날아간다. 내가 잃으면 누군가는 딸 테고 내가 따면 누군가는 잃을 것이 뻔한데 결국 재미 보는 사람은

열에 하나고 증권회사와 큰손들만 배불려 주는 꼴인데 도박에 한번 빠지면 일확천금에 미련이 남아 빠져

나올 수 없듯이 종당에는 어차피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다. 남의 말 듣고 한 번에 복구하겠다고

들어간 것도 또 반 토막이니 죽을 지경이다.
  주식투자에 전 재산을 다 날리고 자살하는 샐러리맨이 속출하는가 하면 나와는 반대로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 몰래 퇴직금으로 주식에 손을 대서 퇴직금을 전부 날리고 남편 보기가 죄스러워 자살한

여인도 있고 이혼을 당한 여자도 있었고 우리 아파트 17층 사는 사람도 처음에 천 만원 가지고 시작한

것이 잔뜩 빚을 지고 결국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전세를 얻어 떠났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제 와서 얻은 결론은 주식으로 돈 벌려면 안 하는 것이 버는 것 아닐까 싶다.

안 하는 것도 투자관리의 한 방법이니까.
 
 나는 이렇듯 계속되는 스트레스로 죽상이지만 아내는 점점 얼굴이 피고 가끔씩 콧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내는 잘 되어 가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자존심 상하게 아내에게 물어 보고 코치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고 주식은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고 하지만 어디가 어깨고 어디가 발목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화투의 뒷장을 우리가 알 수 없듯이 주식은 하느님도 모르고 귀신도 모른다고 않던가.
  어느 여자는 주식으로 재미를 본다는데 개구리 뛰는 방향과 주식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더니 개구리도

습기 있는 쪽으로 뛰듯이 주식도 보인다던가.
  근데 나는 도대체 보이지도 않고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내 생애에 마지막 보루인 퇴직금도 까먹고 후에 아내에게 버림받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그 동안 내가 너무 큰소리치고 내 마음대로 했기에 더더욱 불안하다. 급여도 통장으로 들어가 아내가

관리하고 그저 아내의 충실한 머슴에 불과한 처지인데 지금 아내는 내 통제선 밖에 있고 입김도 안

먹히는데 요즘 나는 퇴직금도 반 토막 냈으니 더 위축되어 부부싸움이라야 백전백패 뻔한 일이다.
  내 어릴 적 동네에서 또래들과 서로 다투고 얻어맞아 울고 들어오면 내 어머니는 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며 나를 달랬지만 나는 어떻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 되는지 어머니의 그 말도 안 되는 궤변에 더

열이 나고 약이 올라서 더 크게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이 나이에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그 말씀.

그 논리가 진리 같아 보인다.
  그 동안은 내가 휘어잡은 것 같기도 한데 어느 새 차츰 차츰 알게 모르게 내가 두 손 들어 버리고 이제는

귀찮아서 싸울 의욕도 없고 아내가 뭐라고 시비를 걸어와도 화를 속으로 삼키며 그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참는다. 그러고도 열이 나서 못 참겠으면 밖에 나가 술이나 마시면 그만이다.
  하긴 결혼 생활 10년 넘어 아내를 이기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아마 모르면 몰라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주인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하인처럼 내 의사는 무시한 채 무조건 아내가 하자는 대로하면 그 순간만은

화가 났지만 지나고 보면 아내 생각이 백 번 옳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

아니지 않았던가.
  아내는 그래도 착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며 건전한 사고방식으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내 옆에 언제까지 인지는 모르지만 살아주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다행이라 여긴다.
  그렇지만 훗날 아내에게 혹시 버림받지나 않을까 만일을 위해 후비보호로 뭔가 확실하고 뾰족한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할 텐데 뾰족한 대책도 없고 그렇다고 정년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다는 뚜렷한 보장도

없는데다가 세월은 자꾸 흘러 늙어만 가는데 남들은 이글에 연속 버디를 잡건만 나는 갈 길은 아직 멀고

바쁜 중에 러프에 떨어지고 해저드에 빠져서 헤어 날 줄을 모르니 내 자신도 안타깝기만 해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인생.
  '25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안소니 퀸의 어정쩡하고 어색한 미소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낸다. 

                                                                              2001. 04월  - 운   명 -
 
 ***
아내는 지금 임대차 사업을 하는 모양인데
나는 어디 돈 많고 혼자 사는 착한 사람 없을까.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