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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 생각나는 사람들

운명2 2015. 9. 13. 10:26

                      담배 - 생각나는 사람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담배가 떨어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안절부절 못하고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주머니에 손이 자꾸 가서 뒤적거리며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마약 중독자가 마약이 떨어지면 그러하리라.


 담배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내가 훈련병 시절일 때, 이틀에 화랑담배 한 갑을 지급했던 것 같다. 나는 비흡연자라서 드롭프스를

지급받았었는데 훈련이 끝나고 10분 휴식시간에는 다들 쓰레기통 비슷한 커다란 재떨이가 있는 곳에

모여 담배를 피우며 고된 훈련에서 잠시 해방되어 달콤한 휴식을 즐겼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누구나 담배를 피우고는 꼭 누런 침을 뱉었다.

그래서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고 보기에도 역겨울 정도로 지저분했다.

 그런데 한 전우가 그 더러운 재떨이에서 그 중 긴 꽁초를 주워 옷에다 쓱, 쓱 닦고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충격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 날부터 나는 흡연자로 등록하고 담배를 지급받아 그 전우에게 주웠다.

 그런 인연으로 그와 친해져 이웃 부대에 서로 근무하면서 자주 만났고 제대하고서도 한동안 어울려

다녔는데 그는 대전서 어느 여자와 결혼도 않고 동거를 하며 사업을 한다고 했고 그 집에 가서 술도

마신 적이 있는데, 우리 집이 이사를 하는 바람에 전화번호가 바뀌고 내가 서울로 올라오는 바람에 헤어져

연락이 끊겼고, 나도 바삐 살다보니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십 여 년 전에 문득 그 친구가 생각나서

주민등록 조회를 해보니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사망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 다던가.

 그래서 더욱 그 친구가 생각나고 왜 죽었을까, 지금도 궁금하기만 하여 애타게 더 그리워진다.


 또 담배하면 생각나는 한 사람, 고향친구가 있다.

 친구 아버지가 시골 장에 가셔서 밤늦도록 오시지 않으니 캄캄한 밤길에 동구 밖까지 마중을 나가면서

담배를 피려고 담배를 꺼내 물었는데 불이 없어 낭패였었나 보다. 담배는 피워야 했고 불은 없으니......

  담배 피우는 사람은 담배는 있고 불이 없으면 더 피고 싶어서 안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입에 담배는

물었고 담배 향기는 나는데 불이 없으니, 배는 고파 밥은 먹어야 하는데 밥만 있고 수저가 없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서 담배가 떨어진 것 보다 더 피우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가 보다. 


 그런데 컴컴한 저 만치 앞에서 뻘건 담배를 들고 오는 사람이 있더란다.

 그래서 급한 김에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 저, 실례지만 불 좀 빌립시다.”

 그리고 쳐다보니

 아뿔싸! 그 사람이 지금 자기가 마중 나가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뜨악!”

 그 놈의 담배 때문에 정신이 팔려 지금 자기가 누굴 마중 나가는 것인지 조차 망각했던 것이다. 

 실례치고 그런 큰 실례는 없을 것이다.

 그런 부끄러운 실수를 저지른 연유로 담배를 끊을 만도 한데 지난 번 동창회에서 만났더니 여전히 담배를

 물고 있었다.


 또 한 사람.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충청도 우리 고향에 자칭 영리하다고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난 나이 지긋한

친척 영감님이 있었다. JQ(잔뇌지수)가 높아서 잔머리 굴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서 그 사람을 당할 수가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영감은 소문난 골초(heavy smoker)였는데 그 경지가 어느 정도냐 하면 아침에 눈을 떠서

밤이 되어 잘 때까지 입에서 한시라도 담배가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담배를 다 피우면 새 것을 꺼내 피우던 담뱃불로 불을 붙였기 때문에 성냥이나 라이터를 쓸 일이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 물론 부득이 세수를 한다거나 밥을 먹는 중일 때는 아쉬웠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영감이 애지중지하는 담배는 겉에 빨간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 ‘솔’이라는 담배였는데

지금은 아마도 없어졌을 것이다.

 그 당시 새로운 제품의 담배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솔’ 담배의 인기는 점점 떨어져갔지만 값에 비해서

맛이 좋았기 때문에 많은 골수팬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영감도 ‘솔’ 담배의 골수팬으로 하루에 거의

댓 갑씩 피워댔으니 엄청난 양이다.


 때문에 담배 값으로 지불되는 돈이 만만치가 않아서 자식들이 보내주는 용돈은 담배를 사는데

거의 다 소모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처럼 특급 애연가인데도 영감은 매우 건강해서 평소에 ‘흡연은

폐암의 원인이 되며 백해무익한 건강의 적이다.’라는 표어  따위에는 귀조차 기울이지 않았으며,

자식들이 오래 사시려면 담배를 줄이라고 해도 콧방귀마저 뀌면서 전혀 믿을 바가 못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영감님의 귀에 청천 벽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다름이 아니라 담뱃값이 대폭 오른다는

소문, 그 것도 엄청나게 많이 올린다는 풍문이 자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격을 올릴 때는 사재기를

 막기 위해 어느 날 갑자기 발표하는 것이 관례였고 그 이전까지는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았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잔머리로 소문난 영감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한 50 박스 정도면 그럭저럭

몇 년은 걱정 없이 피울 수 있겠지?’ 영감은 속으로 이렇게 계획하고 남몰래 꼬불쳐 놓은 비자금도 털고

이웃집에 돈을 빌려서 사재기에 나섰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돌며 남보다 먼저 담뱃가게 아줌마에게 선불까지 지불해 가며 있는 대로 전부 사겠다고 주문을 해 놓았다. 이렇게 해서 며칠 후 아무런 문제  없이 ‘솔’ 담배를 50 박스인가를 확보할 수 있었고,

행복감에 젖어 밤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담뱃값을 올린다는 뉴스가 아나운서 멘트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부는 오늘 날짜로 담뱃값을 평균 20%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영감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흘리면서 뉴스를 보았다.

 아나운서는 오르는 담배 가격을 제품별로 하나하나 또박또박  말했는데 ‘솔’ 담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서 의아한 표정으로 보다가 영감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 ~~ 정부는, 애연가들의 건강을 생각하여 보다 나은 질 좋은 담배를 만들어 권장 판매하기로 하고,

기존의 ‘솔’ 담배는  비인기 제품으로 전락한데다가 수요가 계속 떨어지고 있으므로 가격을 500원에서

200원으로 내려 서민들을 위한 담배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음 소식.~”


 영감님은 그 날 쓰러진 충격으로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그렇게 즐기던 담배를 끊을 수밖에 없었고

그 사재기 한 담배를 다 피우지도 못하고 결국 저 세상으로 갔다.                     

 

                                                                                           2003. 11. 01.      - 운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