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노래방
노래방 문화가 정착 된지도 10년이 넘었나 보다.
처음에는 노래방이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더니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술 마시면 2차로 당연히 노래방으로
가게 되어있다.
나는 대인관계가 성격상 수줍어서(?) 처음에 말문을 트기가 어렵다. 그러나 일단 말문이 트이면 이야기도 부담스럽지 않고
편하고 친근하게 잘 한다고 남들이 그런다.
노래도 마찬가지로 노래를 하려면 처음의 음정 잡기가 어렵다. 일단 음정이 잡히고 나면 분위기에 맞게 잘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잘 부르고 좋아하는 애창곡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 부르는 노래는 그의 애창곡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처음에는 서로 먼저 하라고 미루며 노래책을 밀고 빼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나는 잊지 않고 기억을 해 둔다.
그리고 다음에 또 노래방을 가게 되었을 때, 지난 번 그 사람이 부른 노래를 얼른 입력해 주고 그 노래를 잘 부르더라고
칭찬해 주면 잊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는 내 배려에 좋아했었다.
하지만 나는 애창곡이 따로 없다.
분위기에 따라 노래를 선곡해서 부르기 때문이다. 모임이 있을 때는 미리부터 노래를 선곡해서 테이프를 구하거나 녹음해서
운전을 하면서도 자꾸 듣고 따라 부른다.
내가 배우고 싶은 새로운 노래도 이렇게 해서 나는 익힌다.
자동차 안에 외국어 회화 테이프는 많아도 음악 테이프만 듣는다.
그 놈의 회화 테이프만 들으면 자꾸 딴 생각이 나고 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노래방에 가서 리허설도 해본다. 실제로 내 성량과 키에 맞는지, 그리고 분위기에 맞는지, 어렵지는 않은지...
그런데 요즘 젊은 애들 부르는 노래도 서너 곡 정도는 알아서 젊은 마음으로 신나게 불러도 보고 싶지만 랩인지 몬지
너무 빨라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뿐 아니라 도저히 따라가지를 못한다. 그런 노래를 따라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신세대인지, 쉰세대인지 판가름이 난다던가.
그리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나 도우미 여자와 같이 부를 때는 그 사람의 입을 보고 입을 맞추면 박자를 틀리지 않게
따라 할 수 있는 비결도 있다.
요즘은 노래방 번호 찾기가 힘들어 도우미를 부르는 일이 많은데 제목만 대면 알아서 척척 눌러주고 탬버린 흔들고 춤도 추고
분위기 돋구어주니 좋기도 하다.
그런 젊은 도우미가 많은 것으로 보아 도우미 수입도 괜찮은가 보다.
내가 알기로 서울보다 평촌이나 분당에서 도우미가 먼저 시작 된 것 같은데 지금은 전국적으로 성행해서 아르바이트
주부들이 상당히 많다는 데 놀랍기만 하다.
오랜만에 집 장만하고 아이들 키워놓고 살만해서 여가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것인지, 사교육비 때문에 생활하기가 어려워
부업으로 일을 하는지, 아니면 단순한 취미생활로 놀며 즐기고 돈도 번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불법인데도 버젓이 술을 팔고 도우미를 부르는데도 단속에 안 걸리니 이상하다.
노래방에서 노는 스타일도 개성에 따라 다르다.
노래는 안하고 탬버린만 흔들고 춤추며 노는 사람.
혼자 독무대로 노는 사람.
분위기 안 맞게 엉뚱한 노래로 썰렁하게 만드는 사람.
노래도 못하며 긴 노래 고집하는 사람.
노래 안한다는데 자꾸 귀찮게 강요하는 사람.
고상한척 팝송만 불러 뒤로 눈총 받고 어색하게 만드는 사람.
조용한 발라드풍 노래로 잔잔한 분위기에 사랑스럽게 노래 부르는 사람.
넥타이를 풀어 이마에 묶고 타령하는 사람.
노래는 안하고 도우미만 더듬는 사람.
남들이 다 부러워 할 정도로 프로 가수처럼 노래를 잘하는 사람.
엊그제는 술집에서 일할 때 한두 번 알게 된 여자가 노래방을 인수해서 새로 개업했다고 인사차 연락이 와서
예의상 한번 놀러갔었다.
노래방은 항상 2차라서 거나하게 취했고 으레 비싼 캔 맥주를 또 시켰고 도우미도 부르자는 것을 내가 그날따라
주인아가씨와 같이 놀면 된다고 반대해서 우리끼리 맥주 마시며 노래 부르고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그 주인 아가씨가 경찰 단속에 걸렸다면서 훌쩍 거려 분위기를 깼다.
경찰이 세 명이나 들어와 맥주를 몰래 따라 먹은 테이블의 프라스틱 큰 컵을 가져오라고 해서 가지고 나갔더니 맥주를 팔았다고
딱지를 떼어 영업정지 10일에 벌금이 50만원이란다.
도우미 불렀더라면 더 컷을 뻔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나.
나는 술김에 내가 책임지고 빼주겠다고 큰 소리 치고 분위기를 다시 살려 놀고 나왔는데 이튿날 생각하니 내가 무슨 재주로
책임을 진단 말인가.
돈으로 배상해 주어야 하나.
오늘도 그 아가씨한테 전화 올까봐 전전 긍긍.
아마도 노래방 개업 신고식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아님 상납(?)을 안했는지. 괘씸죄에 걸려 단속에 걸린 것이 아닐까.
노래방에서 맥주 안 팔고 도우미 안 불러주는 노래방이 어디 있단 말인가.
괜히 노래방 잘못가서 내 일처럼 걱정하게 되었으니...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하는지... 노래 부르고 놀 때는 좋았는데 난감하기만 하다.
2003. 10. 23. - 운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