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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돌려다오

운명2 2015. 9. 17. 03:46

       청춘을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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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4-5년 전에 테니스를 무리하게 친 탓인지 아니면 체중이 불어서인지

우측 무릎이 부어 오르고 아파서 걷기가 불편했다.
 병원을 갔더니 의사가 손으로 툭툭 쳐보고는 퇴행성관절염이란다.
 켁!
 80이 넘은 정주영씨가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하며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양쪽에서 부축해서 간신히 걷는 것은 보았어도 나이 마흔 넘어

퇴행성관절염이라니....
 '선상님! 나이 50도 안됐는데 무슨 퇴행성관절염입니까?

 정주영씨 나이라면 몰라도.....'
 '뭐, 그럴 나이가 되었구만요.'
 '엥?'
 그리고는 정확히 진단을 받으려면 입원을 해서 무릎 관절에 센서를 꽂고

관찰을 하고 MRI인지 MRA인지를 촬영해야한단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수술을 해야 한다던가.
 씁스레한 기분으로 병원을 나왔고 결국 허리 아파서 침 맞으러 다닌다는

동네 막역한 술친구 따라 당고개역 뒤 간판은 그럴싸하게 [동양의학 연구소]인

무허가 침쟁이한테 가서 침을 맞으러 갔는데 두 번 이혼하고 혼자 사는 친구 넘은

이상한 여자들만 데리고 다니며 놀더니 허리가 아프다고 누워서 옷을 엉덩이까지

까 내리고 등에다 침을 수없이 찔러서 보기만 해도 겁이 났다.
 그런데 녀석은 침을 맞고 나면 허리가 거뜬하단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겁도 나서 잔뜩 쩔었지만 무릎에 침을 놓고 침 위에다

또 뜸을 붙이고는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닌가.
 불을 붙이는 것은 처음이라서 멍하니 쳐다보다가 아늑한 기분에 혼미해지더니

바보처럼 정신을 잃었단다. 급히 침을 빼서 의식이 돌아 왔지만 친구 녀석이

사람 죽이겠다고 소리치고 그 방에 난리 피우고... 나는 멍청하니 꿀꿀하게

그리고 무척 기분 드럽게 돌아와서 다시는 침을 안 맞았다.
 대신 집에서 적외선 치료기로 물리치료를 하고 봉침을 여러 번 맞았는데

그 덕분일까. 퇴행성관절염이라더니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설악산 대청봉으로

백담사 계곡으로 15시간이 넘게 산행을 하고 테니스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 나이가 든 탓일까. 가끔은 도가니가 시리고 뻑뻑한 것이

퇴화되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안 좋다.

                                      2
 지난 해 여름부터는 신문을 보는데 글자가 가물가물해서 점점 멀리 보게 되고

또 바람만 불거나 테니스를 치려면 눈물이 자꾸 났다.
 나는 갑자기 시력이 떨어져서 당뇨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여 안과에

갔더니 검사도 안 해보고는 의사가 기껏 한다는 말이
 '노아니네요.'
 나는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특이한 병인 줄 알고 긴장해서 다시 물었다.
 '노아니가 무슨 병인데요?'
 '노안이라구요. 나이가 들면 가까운 곳은 잘 안보이는...'
 '켁!'

 결국 돋보기를 쓰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책이나 신문을 보려면 꼭 돋보기를 써야하니 불편하고 또 돋보기를

늘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핸폰 문자메세지 보내려면 애를 먹는다.
 마음 같아서는 특수부호도 사용하고 줄줄이 쪽지처럼 보내겠구만... 아휴!
 그리고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찾느라 노래책을 뒤적일라 면 번호가

잘 분간 안되어 답답하다.
 커다랗게 벽에 붙여 논 최신 인기곡만 부를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그래서 직원들과 노래방에 가면 도우미를 부른다.
 같이 붙어서 춤추고 노래하고 더듬고 하는 도우미가 절대 아니고 노래 번호

대신 찍어주는 말 그대로 도우미로써...

 어릴 적 할아버지들이 돋보기를 코에 걸고 책을 보다가 우리가 다가가면

누군가하고 책에서 눈을 떼고 돋보기 위로 눈을 치켜 뜨고 무섭게 꼬나보던

모습이 선한데.... 내가 지금 돋보기를 쓸 나이가 되다니..... 서글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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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내에 형광등 공장이 생겨서 동네 아줌마들이 생산직 사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너도나도 설쳐댔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고 여럿이 사장실에서 면접을

받았단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는 면접에서 나이가 만으로 50이 몇 달 넘어 결격사유로

채용불가라는 말을 듣고 몹시 실망했단다.
 한창 일할 나이라서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나이 때문에 안 된다는 통보를 받으니 얼마나 세월이 서럽고 늙음이 원통했을까.
 두말 없이 일어서서 사장실 문을 나서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더란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에 애원이란다.
  지나간 그 옛날이 어제 같은데
  가는 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가느냐!
 모두가 웃었지만 그 아주머니는 집에 와서 술잔을 비우며 서러운 눈물을

흘리더란다.
 얼마나 청춘이 그리우면 청춘을 돌려달라고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을까.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고 우연히 길에서 그 아주머니를 만나서

내가 농으로
 '청춘이 다시 왔나, 젊어지셨네.' 했더니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고는 웃으면서
 '내 나이 돼봐. 남의 이야기가 아녀. 세월은 금방 이라니까.'
 나도 씩 웃고 말았지만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 영 기분이 또 꿀꿀했다.

 이제 머지않아 나도 컴퓨터 앞에서도 돋보기를 써야 될 것만 같고 주머니에

돋보기를 챙겨 가지고 다녀야 할 것만 같은 것이... 어느 덧 이렇게 세월은

흘러 나도 노인네 티를 내는 나이가 된 것이...
 서럽고 아쉽고 아픈 마음에 어쩐지 그 노래는 내가 불러야 할 노래 같아서

나도 누구처럼 악쓰며 노래라도 불러야 할 것 같다.
 '아! 옛날이여!'
                               2003. 04. 14.         - 운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