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연가(戀歌)를 아시나요?
양재천 연가(戀歌)를 아시나요?
내가 처음 듣기로는 전에 일산 호수공원에서 어느 중년 여자가 사업에
실패한 남편과 부득이하게 이혼을 하게 되어 실의에 빠져 어렵게 혼자 살면서 호수공원에서
조깅을 하다가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 정이 들고 사랑에 빠져서 같이 살며 혼인신고를 했다던가.
그리고 행복하게 한집에서 살다가 얼마 후, 노인이 죽었다는데.....
그 노인이 남긴 유산이 막대해서 수 억 대의 재산을 상속받아 다시 전 남편과 결합해서
살고 있다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돌아 매스컴에도 등장할 정도로 수도권에 진실처럼 널리 유포되었었다.
그런데 그 후로 등장한 양재천 연가(戀歌)는 더 구체적이었다.
남편의 외도와 실직으로 한숨짓던 40대 젊은 여인이 고뇌 어린 모습으로
서울 강남의 양재천 일대를 산책하다가 점잖은 노신사를 만나게 된다.
노신사는 오래 전 상처하고 인근 타워팰리스에서 혼자 살고 있는 재력가로
둘은 서로의 처지를 동정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노신사는 얼마 후 여인의
남편을 찾아가 사정을 털어놓은 뒤, 거액의 위자료를 건네주고 합의 이혼토록
만든다. 이후 두 사람은 타워팰리스에 살림을 차려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달라지기도 한다.
위자료의 액수가 5억 원에서 30억 원까지 들쭉날쭉 하기도 하고.
노신사가 살림을 차린 후 예의도 바르게(?) 곧 바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수백 억 원대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된 여인이 전 남편과 재결합했다는
이야기까지....
또,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강남 일대 남편들이 아내들에게 앞 다퉈
양재천 산책을 권유한다던가, 그 여인이 양재천에 나갈 때 입고 다닌 것과
같은 제품의 츄리닝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는 소문까지......
그치지 않고 불어난 비처럼 '일산 호수공원 러브 스토리'에 이어
'양재천 연가'가 생겨나듯 분당에는 '중앙공원버젼'도 있고
수원에는'수원화성버젼' 그리고 대전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퍼져있다고 한다. 부산에도 '용두산연가'가 있을라나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나는 이 연가들이 진실이 아닌 인위적으로 꾸며낸 허위사실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이유에 대해서
어느 작가는 말하기를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로맨스를
갈구하고 있으며 성적으로 문란해질수록 순수한 사랑에 대한 동경이 한편으로
깊어간다는 방증이라고 했었다.
글쎄, 그 것이 순수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1970년대 프리섹스 물결이 휩쓸던 미국에서는 명문대생의 순수한 사랑과 신분차이를
극복한 결혼, 그리고 백혈병에 걸린 아내의 죽음을 담은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가
많은 젊은이들의 감동시켰고.
에이즈와 동성애. 그리고 가족의 해체가 극대화 된 1990년대에는 미국 중서부 아이오와주
한 아름다운 다리를 매개로 52세의 사진작가와 45세 시골주부가
펼친 나흘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담채화(淡彩畵)처럼 그려낸 제임스 윌러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중년 남녀의 심금을 울렸던 것처럼.
또한 경제 불황에 의한 경기 침체로 급증하는 이혼율, 배우자의 외도와 실직,
고령화 사회에서 노년의 성적(性的)고독, 거금을 준다면 아내도 내어줄 수 있다는 가치관의
세태 등 로또 복권에 따른 대박 신드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도 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양재천 연가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궁금할 뿐 아니라 그런 이야기가 왜 떠돌아다니는지
그 이유에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을 듯도 싶다.
요즘 경제 살리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부동산 투기 잡기에 강남 때리기의
정치권과 맞물려 없는 자들의 부와 명예의 상징이 된 타워팰리스에 대한
선망과 가진 자들에 대한 배척의 심리가 묘하게 작용한 픽션으로 작금의
사회적 세태를 비틀어 풍자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대박을 꿈꾸는 욕구에서 나온 희망사항의 과대망상인가.
그도 아니면 비슷한 사건을 한껏 부풀려 확대시킴으로 대리만족을 누리고자 한 것은 아닌지.
요즘 1주일에 기본으로 7,8명씩 수십 억 로또재벌이 생겨나던데, 그 많은
재벌들은 다 어디에 묻혀있는지. 궁금하고...
그 로또 재벌들에 의한 새로운 러브 스토리가 탄생되는 것은 아닐까.
나도 얼마 전에 호기심에 양재천을 걸어보면서 두리번두리번 돈 많아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보았지만, 돈 많은 젊은 여자는 양재천에서 조깅이나 자전거를 탈 일은 분명 없을 테고,
요즘은 양로원에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수십억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한 달에 한 번 양로원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수십억 현금 통장을 몰래 가지고 있는
할머니들이 누굴까.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누가 알겠는가. 양로원에서
세기의[황혼의 로맨스]가 탄생될지. 하하하하.
하지만 내 팔자에 뭔 로또 복권이 당첨되고, 내 운명에 뭔 돈 많은 할머니를 만나겠는가.
내가 로또 복권을 꿈꾸고, 양로원의 러브스토리를 꿈꾸는 것이나 작금의
양재천 연가는 물질 만능주의에서 오는 한낱 부질없는 개꿈일 뿐이며...
지금 이만큼 누리고 사는 내 자유와 행복을 최고라고 생각하며...
소박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자위해 본다.
2005. 09. 15. - 운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