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시험 이야기
과거 시험 이야기
조선시대 중엽, S임금 시절의 실화 한 토막.(믿거나 말거나)
충청도 괴산 땅에 과거 지망생 P모 선비가 있었다.
그는 3년 동안 오로지 과거 시험공부만 전념하여 중국의 사서오경과
사기를 다섯 번이나 떼고, 기 출제 과거시험 문제까지도 두루 섭렵하여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길을 나섰다.
괴나리봇짐에 짚신 두 짝을 매달고 걸어서 음성, 장호원을 거쳐 이천을
지나 지금의 곤지암 근처에서 날이 저물어 주막에서 일박을 하는데...
여기서 부터는 늘 뻔한 이야기, 안 봐도 비디오로 유생과 주모와의 러브
스토리 아니겠는가. 젊은 주모가 선비의 인품과 외모에 반해서 밤늦도록
잠을 못 이루고, 흠모하다가 참지 못하고 결국 주안상을 차려 선비의
방에 찾아 들고...
여자를 멀리해야 할, 과거 지망생 선비이고 그가 아무리 굳은 신념과
곧은 의지를 가졌다 하더라도 예쁜 젊은 여자가 삼류 소설이나 에로영화처럼
치마를 들척거려 허연 허벅지 살을 보여주고 뽀얀 젖가슴을 보일락, 말락
들어내 놓고 수작을 거는 데야 안 넘어갈 선비고, 사내가 그 어디 있겠는가.
자신이 넘어가기 전에 우선 먼저, 혼자 있는 주모를 어떻게 하더라도
자빠트리려 하는 사내들이 즐비한 마당에...
과거 시험으로 마(魔)가 끼거나 부정을 타지 않게 정갈하고 조신해야 할
선비도 여자 앞에서는 과거고 뭐고, 십년공부 도로나무아미타불.
모래성 허물어지듯 무너져 결국 운우지정을 나누게 되는데...
그런데 막상 거사를 치르려하는데 아! 글쎄, 영 거시기(?)가 말을 듣지 않아
기척도 없고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주모는 오랜 시간 애를 쓰고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해도 헛수고만 하고,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주모는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참다못해 토라져서 나갔단다.
지금의 의학적 용어로 과거 시험에 부담을 느낀 심인성 발기부전이겠지만...
아마도 선비가 아니라 상민보다 못한 쪼다로 주모는 멸시까지 했으리라.
아! 가엾은 선비의 몰골이여!
쥐구멍이라도 찾을 정도로 얼마나 수치스럽고 죽을 맛이던가.
쫓기듯 주막을 나와 다시 한양 길을 가면서도 온통 나약하고 부끄러운
생각 뿐. 죽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결국 과천을 지나 한강 나루터까지 와서는 여자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만족시켜 주지도 못하는 놈이 과거는 보아서 뭣하며,
과거 볼 가치도 없다는 자격지심에 세상을 하직하려고 결심하고
한강물에 빠져 죽으려고 짚신과 관을 벗어놓고 물로 뛰어드려는 순간.
아, 글쎄. 어젯밤에도 고개만 숙이고 죽어있던 놈이, 느닷없이 제 분수도
모르고 벌떡 일어서 뻗치는 바람에 거시기가 나루터 난간의 나무에 걸려
강물로 빠지지를 못했던 것이다.
선비는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 구나.
한탄하며 아마도 살아야 할 팔자고 운명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아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창경궁에 도착하여 과거 시험을 보는데...
과거 시험의 시제가 당연히 當(당), 움직일 動(동)字 이었던 것이다.
선비는 그 순간, 간밤의 주막에서 낭패와 한강에서 자살하려다 실패한 일을
생각하고 거침없이 쓴 것이...
當動不動 死僞裝 (당동부동 사위장)
伏地不動 屍臥態 (복지부동 시와태)
當不動動 夸跳侈 (당부동동 과도치)
輕擧妄動 駾蹴倒 (경거망동 태축도)
내용인즉,
유생들이 당연히 움직여 일어서야 할 때는 아니 일어서고
죽은 듯이 위장하고,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고 시체처럼
누운 태도를 취하며 당연히 움직이지 말고 죽은 듯이 있어야 할 때는
벌떡벌떡 움직여 분수도 모르고 날 뛰고, 경솔하게 조심성 없이
말이 날뛰듯 천방지축 걷어차고 날뛰다가는 종당에는 자신이 넘어지더라...(하하)
당연히 압권이었고 선비는 장원급제하여 지방 목사로 부임하여 내려가면서
그 주막의 주모와 해후도 하여 이번에는 실수 없이 사랑도 나누고 임지로 대동하고
가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고 후일에 중앙부서 판서까지 역임했다고 한다.
선정을 베풀고 떠났기에 충청도 증평에는 그의 송덕비가 지금도 있다는데 ...
아마도 그 시절에 새로운 학문을 추구하며 당연히 개혁을 부르짖고 새로운 정치를
펼 것을 주장해야 할 위치에 있는 선비나 정승들은 죽은 듯이 伏地不動(복지부동)으로
조정의 눈치만 보고 있었으며, 당쟁만 일삼던 선비나 유생들은 당연히 숨죽이고 자세를
낮춰 침묵을 지키며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겸손하게 근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 변한지도
모르고 분수도 없이 자신의 본분도 망각한 채 보수니, 개혁이니 새로운 색깔로 치장하고
輕擧妄動(경거망동) 날 뛰었나 보다.
임금이 무슨 정치나 법을 시행하려하면 시행하기도 전에 툭하면 전국에서 선비와 유생들이
몰려와서 광화문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철회를 요구하며 항의성 읍소를 하고,
별 중요하지도 않은 왕대비 서거에 상복을 어떤 색으로 몇 년을 입어야 하는지를 당파 싸움으로
지새우고 또는 반대로 관변단체나 시민연대(그 시대에는 백성연대나 고을연대였겠지만)에서는
정책을 찬성한답시고 빨리 시행하라고 시위를 자주 했었던가 보다.
요즘도 사회 경향 각지 여기저기서 정작 목소리를 높여야 할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하여
當動不動(당동부동)하고 복지부동하며 안일하게 윗사람 눈치나 보고, 조용히 자숙하고 가만히
지켜보면 좋으련만, 분수도 모르고 여기저기 인터넷 등, 안 끼는 데가 없이 벌떡, 벌떡 일어나서
설치는 當不動動(당부동동)하고 경거망동하는 사람은 없는지.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 할 줄 알고, 나서려면 실제 나서야 할 인물이 되는가를
스스로 잘 판단해야 하는 것이 현명한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 된다는 깨우침을 주기도 한다.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 옛 일화를 생각해 보며 이것으로도 溫故知新(온고지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내가 말 하고도 나도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은 채,
공연히 흐르는 옅은 미소가 쉬이 떠날 줄을 모른다.
2004. 5. 31 - 운 명 -
* S 임금의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 과거 시험 출제 시제를
찾아보는 헛수고는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