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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생각나는 사람들

운명2 2017. 7. 7. 11:16


담배 - 생각나는 사람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담배가 떨어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안절부절 못하고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주머니에 손이 자꾸 가서 뒤적거리며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마약 중독자가 마약이 떨어지면 그러하리라.

 

 담배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내가 훈련병 시절일 때, 이틀에 화랑담배 한 갑을 지급했던 것 같다. 나는 비흡연자라서 드롭프스를

지급받았었는데 훈련이 끝나고 10분 휴식시간에는 다들 쓰레기통 비슷한 커다란 재떨이가 있는 곳에 모여

담배를 피우며, 고된 훈련에서 잠시 해방되어 달콤한 휴식을 즐겼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누구나 담배를 피우고는 꼭 누런 침을 뱉었다. 담배의 쓴맛일 것이다.

그래서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고 보기에도 역겨울 정도로 지저분했다그런데 한 전우가 그 더러운

재떨이에서 그 중 긴 꽁초를 주워 옷에다 쓱, 쓱 닦고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충격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 날부터 나는 흡연자로 등록하고 담배를 지급받아 그 전우에게 주웠다그런 인연으로 그와 친해져

이웃 부대에 서로 근무하면서 자주 만났고 제대하고서도 한동안 어울려 다녔는데 그는 대전서 어느 여자와

결혼도 않고 동거를 하며 사업을 한다고 했고, 그 집에 가서 술도 마신 적이 있었다.

단독주택에 딸린 작은 방으로 신혼살림처럼 비키니 옷장에 부엌이 딸린 작은 방이었는데, 들어서자마자

담배 냄새가 방안에 잔뜩 배여 있어 역겨웠지만,

애완견 샵에 들어가면 고약한 냄새에 머리가 아프지만, 금방 후각이 마취되어 아무 냄새도 못 느끼는 것처럼

친구의 담배 연기에 묻히고 부엌의 요리 냄새에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월남치마를 입고 부엌에서 석유곤로를 사용해서 해물탕에 고기를 볶고, 계란말이를 해서 하나씩 들여보내던

그 여자가 지금도 생각나는데, 조용해서 내가 일부러 웃기는 소리를 해도 소리 없이 씽긋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준비한 술이 다 떨어져서 내가 술을 사러 나간다고 하니 자기가 사오겠다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키가 작아보였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쌍꺼풀눈에 눈웃음이 매력적이고 착하고 순하게 보였지만,

각진 얼굴이 어딘지 인상을 흐리게 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술을 사러 나간 사람이 너무 늦어 내가 걱정을 했더니, 담배까지 사오느라 늦을 거라고 나를 안심시키는데,

한참 후 들어올 때 보니 정말로 기다란 담배 한 보루를 술과 함께 꺼내 놓는 것이었다.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 하는 나에게 그 여자는 웃기만 하고 말이 없었고,

친구가 고향 후배라고 대신 대답을 했는데, 어쩐지 육감적으로 전방에서 만났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내 뇌리를 스쳤지만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제대하고 뚜렷한 일도 없는 친구에게 그 여자가 벌어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였기에,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이냐는 내 물음에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나중에 말하겠다는 말로 내 입막음을 했었다.

얼마 후 우리 집이 이사를 하는 바람에 전화번호가 바뀌고, 나는 학교문제로

서울로 올라오는 바람에 헤어져 연락이 끊겼고, 졸업하고 취업 후에는 바삐 살다보니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십 여 년 전에 문득 그 친구가 생각나서 여기저기 수소문 해보니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 친구가 생각나고 왜 죽었을까,

그리고 같이 살던 그 여자는 어찌되었을까

지금도 궁금하기만 하여 애타게 더 그리워진다.

 

 담배하면 생각나는 또 한 사람,

초등학교 여자 동창의 오빠가 있다.

 나에게는 형뻘인 셈인데 겨울 어느 날, 술 좋아하는 그 형의 아버지가 시골 장에 가셔서 밤늦도록 오시지

않으니, 걱정이 되어서 캄캄한 밤길에 동구 밖까지 마중을 나가면서 담배를 피려고 담배를 꺼내 물었는데,

불이 없어 낭패였었나 보다.

담배는 피워야 했고 불은 없으니......

  담배 피우는 사람은 담배는 있고 불이 없으면 더 피고 싶어서 안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입에 담배는 물었고 담배의 니코틴 향기는 이미 입안에 가득한데 불이 없으니,

배는 고파 밥은 먹어야 하는데 밥만 있고 수저가 없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서 담배가 떨어진 것 보다

더 피우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가 보다

하긴 밥은 아무 나무나 꺾어서 젓가락으로 사용하면 되지만, 캄캄한 밤에 불이 없으니 속수무책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외국처럼 질겅질겅 씹는담배라도 있었으면 몰라도...

 그런데 컴컴한 암흑 속에 저 만치 앞에 구세주처럼 뻘건 담뱃불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급한 김에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 , 실례지만 불 좀 빌립시다.”

 그리고 쳐다보니 아뿔싸! 그 사람이 지금 자기가 마중 나가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뜨악!”

 그 놈의 담배 때문에 정신이 팔려 지금 자기가 누굴 마중 나가는 것인지 조차 망각했던 것이다

자신의 말대로 실례한 것은 확실하지만, 실례치고 그런 큰 실례는 없을 것이다.

그 형은 한 달이 넘도록 한 집에서도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던가.

 그런 부끄러운 실수를 저지른 연유로 담배를 끊을 만도 한데,

지난 번 향우회에서 만났더니 여전히 담배를 물고 있었다.

하긴 그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그 형이 그 때의 아버지 보다 더 나이가

많을 테니 담배 피우는 것을 누가 뭐라 하랴.

낮술에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지만,

담배에 중독되면 애비 보다는 불이 먼저 보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담배하면 또 한 사람.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충청도 우리 고향에 자칭 영리하다고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난 나이 지긋한

친척 영감님이 있었다. JQ(잔머리 지수)가 높아서 잔머리 굴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기에 그 사람을 당할 수가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그런데 이 영감은 소문난 골초(heavy smoker)였는데 그 경지가 어느 정도냐

하면 아침에 눈을 떠서 밤이 되어 잘 때까지 입에서 한시라도 담배가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물론 그 만큼 담배를 즐겨 피운다는 말이 와전되어 담배를 다 피우면 새 것을 꺼내, 피우던 담뱃불로 불을

붙였기 때문에 성냥이나 라이터를 쓸 일이 거의 없었을 정도라는 거짓말까지 나돌 정도였단다.

 이 영감이 애지중지하는 담배는 겉에 빨간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 이라는 담배였는데 나이 든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새로운 제품의 담배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담배의 인기는 점점 떨어져갔지만 값에 비해서 맛이

좋았기 때문에 많은 골수팬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영감도 담배의 골수팬으로 하루에 거의 두 세 갑씩

피워댔으니 엄청난 양이다때문에 담배 값으로 지불되는 돈이 만만치가 않아서 자식들이 보내주는 용돈은

담배를 사는데 거의 다 소모했다고 한다.

워낙 잔머리를 잘 굴려서 같이 술 마시고도 술값 안내기로 정평이 날 정도로 짠돌이였기에, 다른 사람들한테

담배 인심도 쓸 줄 모르고 오로지 자기 것만 아는 사람이었다.

다행히도 그처럼 특급 애연가인데도 영감은 매우 건강해서 평소에 흡연은 폐암의 원인이 되며 백해무익한

건강의 적이다.’라는 표어  따위에는 귀조차 기울이지 않았고, 자식들이 오래 사시려면 담배를 줄이라고 해도

콧방귀마저 뀌면서 전혀 믿을 바가 못 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인명은 재천이라서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오로지 하늘만이 아는 일이라는

나름 그럴듯한 자신의 논리로 피력할 정도였으니...

 그러던 어느 날, 영감님의 귀에 청천 벽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다름이 아니라 담뱃값이 대폭 오른다는 소문, 그 것도 엄청나게 많이 올린다는 풍문이 자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격을 올릴 때는 사재기를 막기 위해

어느 날 갑자기 발표하는 것이 관례였고 그 이전까지는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았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잔머리로 소문난 영감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100 박스 정도면 그럭저럭

몇 년은 걱정 없이 피울 수 있겠지?’ 영감은 속으로 이렇게 계획하고 남몰래 꼬불쳐 놓은 비자금도 털고

이웃집에 돈을 빌려서 사재기에 나섰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돌며 남보다 먼저 담뱃가게 아줌마에게 선불까지 지불해 가며 있는 대로 전부 사겠다고

주문을 해 놓았다. 이렇게 해서 보름도 안 되어 아무런 문제  없이 담배를 100 박스인가를 확보할 수 있었고,

행복감에 젖어 밤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이제는 룰루랄라. 담배 값이 오르기만을 느긋하게 기다리던 어느 날, 정말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담뱃값을

올린다는 저녁 9시 뉴스가 아나운서 멘트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부는 오늘 날짜로 담뱃값을 평균 20%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영감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흘리면서 뉴스를 보았다.

 아나운서는 오르는 담배 가격을 제품별로 하나하나 또박또박  말했는데 담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서

의아한 표정으로 보다가 영감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 ~~ 정부는, 애연가들의 건강을 생각하여 값을 올리는 대신, 보다 나은 질 좋은 담배를 만들어 권장

판매하기로 하고, 기존의 담배는  비인기 제품으로 전락한데다가 수요가 계속 떨어지고 있으므로 가격을

500원에서 200원으로 내려 서민들을 위한 담배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음 소식.~”

 

 영감님은 그 날 쓰러진 충격으로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그렇게 즐기던 담배를 끊을 수밖에 없었고,

그 사재기 했던 담배를 다 피우지도 못하고 결국 저 세상으로 갔다.    

잔머리 잘 쓰는 사람은 종당에는 자기의 잔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패착을 두어 크게 당하기 마련이다.

잔머리는 결국 큰 머리를 이길 수 없다는 섭리이다.

영감의 장례를 치루고, 다락에 가득 쌓인 그 솔담배는 자식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단다.

그렇게 짠돌이로 평생 살다가는 죽고 나서, 사재기한 솔담배 잔치로 동네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심을 썼던

것이다.  

영감님 말대로 인명은 재천일 것이다.